매주 마감에 급급하다보니 어느새 내년이면 5년차 영화기자다. 돌이켜보니 방점은 ‘영화’가 아닌 ‘기자’였다. 기억에 남는 영화보다는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많았고, 첨언하고 싶지 않은 영화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 곤혹감이 늘 함께하는 리뷰와 달리 사람을 만나는 인터뷰는 대부분 설렜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스타들이어서였을까. 라운드 테이블 바로 옆자리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눈을 맞출 때는 정신이 혼미했고, 로버트 드 니로가 전쟁 같은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에서 보여줬던 신사적인 면모는 감동적이었으며, 어쩌다보니 두번씩 만나게 된 장첸은 똘망똘망한 뒤통수를 만지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힘들었다. 국내 감독이며 배우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한두해가 지나면서 웬만해선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스타배우 인터뷰에 대한 콤플렉스에, 유난히 메이저와는 거리가 먼 취향과 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이른바 꽃미남 배우들의 커버스토리 인터뷰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언제부터였던가. 촬영감독과의 인터뷰 혹은 촬영감독에 대한 자료를 읽고 기사를 쓰는 일을 즐기게 됐다. <그때 그사람들> 직후 김우형 촬영감독과의 인터뷰가 계기였던 것 같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 깃든 기묘한 활기와 우아함의 열쇠가 그에게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다. 사실 스타일없는 스타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직관과 분석력, 감독의 말을 경청하며 보좌하는 겸손함…. 이런 식의 소극적인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촬영감독이야말로 현장의 중심이고 영화의 핵이다. 감독을 작가라 부를 수 있다면, 감독의 언어를 스크린에 펼쳐놓는 그들의 통역법에도 일관된 화법이 있다.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 카메라 앞보다는 뒤가 익숙한 그들은 대부분 말수가 적고 사진 촬영도 어색해하며 무엇보다 인터뷰 자체를 꺼리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고 배울 게 많았다. 입이 아닌 몸을 사용하는 이들 특유의, 어눌하지만 진솔한 말투를 옮기는 것도 좋았다. 김삿갓 같은 풍모의 조용규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조상윤 등 충무로의 떠오르는 촬영감독 8명 중 4명과 그렇게 만났다. 감독이나 배우에 비해 지면에 초대할 수 있는 횟수는 현저하게 적게 마련이므로 어쩌다 기회가 오면 늘 행복했다. 그래도 영화전문지가 아니었다면 촬영감독을 인터뷰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며 영화기자여서 다행이라고 여긴 것도 그럴 때였다.
욕심은 점점 커진다. 국내 촬영감독이라면 어떻게든 만날 기회를 노려보겠는데 해외 촬영감독은 여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해외 촬영감독의 기사를 쓸 때 자료를 찾다보면 그들의 육성을 직접 전하는 기사가 (한국에 비하면) 제법 많다는 것에 감사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성사되기 어려운 게 로드리고 프리에토 인터뷰일 듯싶다. 그의 촬영이 지닌 모든 장점을 한자리에 모은 최고작인 <색, 계>를 보고 돌아온 뒤에는 해외 촬영감독들의 현장 사진이 잔뜩 실리는 촬영잡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만 더듬었다. 별수있나. 그 숱한 할리우드영화의 라운드 테이블에 감독과 배우 심지어 CG슈퍼바이저뿐 아니라 촬영감독도 등장하기를, 영화제 기자회견에도 촬영감독이 동행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랄 수밖에. 이루지 못할 꿈이라 더욱 애틋하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