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초기 하늘처럼 높아 보이던 선배 2명을 거쳐, “책을 관리하는 사람이 너이니 네가 책 담당을 하려무나” 하여 얼결에 받아버린 ‘신간 담당’이라는 자리는 보이는 것처럼 매력적인 업무는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신간은 정돈하기가 무섭게 책상을 점령하고, 읽으려고 마음먹은 책들은 눈길 한번 못 받고 책꽂이로 쫓겨나는 게 다반사다. 신간을 많이, 또 먼저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뭘 모를 때 꾼 꿈이었다. 한주에 한권이라도 통독할 수 있으면 다행일까? 가장 비중있게 다룰 신간을 고르는 것으로 시작해 소설·인문·사회·교양·자기개발·만화 등 치워도 치워도 낮아지지 않는 책 더미에서 4권을 골라 지면을 채울 단신을 쓰는 것이 내가 매주 오르는 시시포스의 산이다. 취미도 일로 하면 고되다고, 어림잡아 1주에 도착하는 30~40권 중에서 몇권을 고르는 신나야 마땅한 일도 일로 하니 책임이 됐다. 그나마 만화를 전담하는 편집팀 K선배, 전임 신간 담당 L선배와 함께 필자에 대한 의논도 하고 분량도 정하며 외롭지 않게 책 지면을 만들고 있지만, 임신 중인 K선배가 출산과 함께 사무실을 떠나면 어찌해야 좋을지 막막하다. 월요일마다 대형서점에 가면서도 둘러볼 여유조차 없는 내가, 만화서점까지 정기적으로 들러가며 신간 수발을 할 수 있을까 벌써 아득하다.
어제오늘 시작한 일도 아니면서 새삼 겁을 먹은 계기는 따로 있다. 지난주 발행된 <씨네21> 책 지면에 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를 소개했다. 마음 같아서는 크게 다루고 싶었지만, 따로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 아쉽게도 단신으로 알릴 수밖에 없었다. 선배가 (위의 하늘 같은 선배 중 하나다) 쓴 책을 단신으로 쓰는데, 평소와 달리 술술 써지지 않았다. 내가 단신을 술술 쓴다는 건 아니지만 이것도 하다 보니 요령이 붙던 요즘이었다. 주어진 분량은 1.2매에 불과한데 뭐라고 수식이라고 할 참이면 표현이 길어져 분량이 넘치는 것은 예사고, 될 수 있으면 거리를 두고 설명해야 하는데 호감을 표하는 동시에 예의까지 차리려다보니 진땀을 뺐다.
아무나 책 내는 세상이라고 밀물처럼 밀려오는 신간을 보며 원망도 하지만, <씨네21>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 한권의 탄생이 필자를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력을 다하는 편집자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인쇄소 직원 등 만인의 노고가 녹아든 작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과정을 마친 결과물에 대해서 경외심을 갖지 못할망정 옥석을 가려낼 안목이 내게 있을까, 또 최근 자주 언급된 ‘<씨네21>의 취향’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공짜로 책을 받는 입장에서 지갑을 여는 사람들에게 권한다고 생각하니 그 자격에 대해 집요하게 고민하게 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매일 내 앞에 쌓여가는 책들의 물리적인 높이보다도 그 높이를 만들어낸 노고들에 압도되면서, 오랜 시간 영화를 가까이 두고 사귄 선배의 책 한권을 핑계로 삼아 그 앞에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반복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