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신념과 스타 산업의 위험한 모순
조지 클루니의 아버지는 알려진 것처럼 오랜 방송인 닉 클루니다. “가족 중에 언론인이 있거나 당신 자신이 언론인이면 알 것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것에서 멀어지기는 어렵다.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에 대해 언제나 얘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어릴 때부터 이런 정치적 건전함과 추진력을 배웠다는 뜻이지만, 자본에 구속된 쇼비즈니스의 생리는 그 안에 속한 어떤 사람에게도 신념과 삶의 순결한 일치를 장담해주지 못한다. 호주 일간지 <선 헤럴드>는 지난 가을, ‘조지, 그의 양심과 대면하다’(George Faces up to His Conscience)라는 제목을 걸고 할리우드 좌파스타 조지 클루니의 여러 가지 모순을 ‘고발했다’. 2005년 클루니가 보노, 겔도프와 함께 G8 정상회담장에 찾아가 아프리카 난민 구호와 제3세계 부채 탕감을 호소하기 몇 시간 전, 그가 브래드 피트를 포함한 투자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사업에 투자한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올해 베니스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는, 초국적 기업의 반윤리적 행태를 다룬 <마이클 클레이튼>에 출연하고 몸소 제작하면서 네슬레 커피의 광고모델로 나서 이유는 뭐냐고 물었다(이 질문을 던진 기자는 네슬레가 1970년대에 고출산·저교육의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비윤리적인 분유 마케팅을 펼친 기업임을 상기시켰다). 지구 온난화 위기를 목놓아 부르짖었던 엘 고어가 자택 전기요금 액수를 들키고 민망해했던 것처럼, 전기 자동차를 산 클루니도 해외 이동시 개인 전용 비행기를 쓰면서 몇만리터의 석유를 낭비한다고 비난받았다.
2005년 다르푸르 문제 관련 집회를 통해 클루니와 가까워진 배럭 오바마 의원은 <LA타임스>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셀레브리티에 집착하는 문화에 있다. 무비스타가 개입되면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 사람이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을 실제로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좋다. 클루니는 그냥 꽃미남 배우가 아니다. 그는 매우 실질적으로 목표를 정확히 알고 있고, 그 열정을 당신도 그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지 클루니는 자신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삶이 불일치하는 부분을 인정하면서, 부친과 다르푸르에 가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아버지가 방송 기자를 할 때, 온두라스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취재해왔는데 방송사에서 ‘시청자들은 그런 데 관심없다’는 이유로 뉴스화를 거부했다. 이번에 아버지에게 그 얘길 하면서 그때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거기 있었으면 그건 뉴스에 나갔을 거 아니냐 했더니, 아버지가 그렇다고 했다.” 조지 클루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거예요. 제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될 테니, 아버진 뉴스를 보도하세요.”
“셀레브리티가 신용카드라고 하면, 나는 그 카드를 지금 쓰고 다니는 것”이라는 조지 클루니의 말은 그의 행보에 관한 더없이 적합한 비유다. 그는 자신이 여든살이 되는 날이 두려우며, 그때가 되었을 때 ‘내가 남기게 될 유산은 대체 뭘까’라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올 여름, 조지 클루니가 뜬금없이 기자에게 전화해 정치적 이슈를 논하자고 했다는 <LA타임스>의 기사는 마지막이 이러했다. “내 직업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슈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셀레브리티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 정책이 좋든 나쁘든, 그것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엔터테이너가 정치적 올바름에 기여하는 방법
다소 낯설지만 셀레브리티 정치학이라는 말이 있다. 스타가 정치적 입장을 가지거나 정책을 이야기할 때, 스타에게 대중이 갖고 있던 호감도가 정치로 전이되는 현상을 분석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르네 젤위거, 줄리아 로버츠를 비롯한 무수한 여성스타들과의 연애 또는 연애설로 뉴스난을 달구는 <GQ>의 단골 커버 모델. 정치인이 되기엔 “뒤가 구린 가십이 너무 많아 위험한” 스타. 동시에 조지 클루니는 존 케리로부터 대선 캠페인의 얼굴마담을 부탁받을 만큼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인물이다. 조지 클루니는 존 케리에게 “내가 그 일을 하면 당신에게 해만 끼칠 겁니다”라고 메모를 써서 보냈다. 다르푸르에 관한 깊은 지식과 이해와 당신만의 입장은 당신 스스로 정할 일. 클루니가 하는 일은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와 액션블록버스터의 쾌락에 가려진 세계 공동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할리우드의 작은 양심이 되는 것이다.
내일 당장 조지 클루니가 전기자동차와 공용기만을 타고, 돈 되는 모든 광고 활동을 접고 육체적 자선활동에만 몰두하며, <오션스 13>과 같은 오락영화 출연을 영원히 거부하고 <시리아나> <마이클 클레이튼> 같은 현실 고발의 책임에만 머문다면, 그의 신념과 삶은 성스러운 일치에 이르고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통합된 인물로 남겠지만 그를 둘러쌌던 대중스타로서의 아우라는 어쩔 수 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조지 클루니의 정치적 메시지는 그의 의지가 개입된 일부 영화적 텍스트에서 신임을 얻고, 그만의 스타성을 통해 효과적인 주목을 얻는다. 그리고 적어도 그것은 현대 민주인권운동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패권주의의 위선보다 훨씬 솔직한 제스처다. 그 점만으로도 조지 클루니는 할리우드의 ‘얼짱’ 양심으로서 유의미한 이름이다.
조지 클루니의 다르푸르 현지보고
<오프라 윈프리 쇼> 등서 공개된 다르푸르의 참상
21세기 최악의 인권위기-수단 다르푸르 인종청소.’ 2004년 영국 <BBC> 기자 힐러리 앤더슨이 그해 7월에 보름간 다르푸르에 머물면서 직접 겪은 참상을 보도한 내용의 타이틀이다. 수단 다르푸르 학살은 1983년 아프리카계 기독교 반군과 이슬람교인 아랍계 정부군의 충돌로 21년간 2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수단 내전의 최후 비극상이다. 2003년, 반군과 정부가 내전종식을 위한 합의문에 동의했지만 다르푸르 지역 반군이 정부의 친아랍계 정책에 반발하고, 이에 친정부 아랍계 무장조직 잔자위드가 반격에 나서면서 인종청소에 가까운 대량학살이 시작된 것이 이 사태의 전모다. 수단 정부의 방관(또는 암묵적 승인)하에 잔자위드는 마을을 불태우고, 무력을 행사해 아프리카계 토착민들을 땅에서 몰아내며, 조금이라도 ‘더 하얀’ 피부의 자손을 낳으라고 여성들을 그들의 가족 앞에서 무차별 강간한다. 150만명에 이르는 다르푸르 난민들은 수단과 차드의 접경지역으로 흩어져 섭씨 40도를 넘는 건기 속에 물과 식량 부족으로 앓고, 죽고 있다.
2006년 초 조지 클루니와 닉 클루니 부자는 바로 그 지역을 다녀왔다. “우린 지금 차드와 수단의 접경지대에 있습니다. 수단 남쪽에서 이곳으로 오는 데 이틀이 걸렸는데, 오면서 1천개 넘는 가정이 파괴된 마을을 지났습니다.” 내레이터 역할에 충실한 조지 클루니는 현지 사람들을 다양하게 인터뷰해 담기도 했다. “정부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서 수단이 아랍 사람들의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아랍 국가. 흑인들의 국가가 아니라 아랍 사람들의 국가말입니다.” “이 상황을 당신이 바꿔서 원하는 게 뭐요?” “UN도 있고, NGO도 수없이 많은데, 그들에게 간절히 빌고 빕니다. 이 사태를 도와주십시오. 가능한 한 빨리. 수단 정부는 아프리카에서 모든 흑인들이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닉 클루니도 나서서 말한다. “이곳에서 가장 끔찍한 죽음은, 희망의 죽음입니다. 200만명의 사람들이 터전에서 버림받았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