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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나쁜 놈일까, <석양의 무법자>

KBS1 12월9일(일) 밤 12시50분

할리우드를 호령했던 서부극이 점차 자신의 존재 기반을 상실하며 쇠퇴해갈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새로운 웨스턴 장르가 등장하고 있었다. 일명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는 일련의 영화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시리즈’는 기존의 장르 안에서 미국식 카우보이와는 전혀 다른 인간상을 창조해낸다. 그의 영화는 문명 대 야만, 선 대 악의 구도 속에서 개척정신과 영웅 신화로 이어져온 할리우드의 서부극을 모방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보여주는 인간상과 세계는 그러한 이분법적 구도로 설명하기에 훨씬 복합적이다. 인물들은 이미 자기 안의 탐욕과 허무에 눈을 떴으며, 세상은 자본과 전쟁으로 얽혀 있다. 말하자면 이 새로운 서부극은 순수한 과거, 정의, 선 등과 같은 외부의 절대적인 가치 혹은 그러한 허구적 가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비웃는다. 물론 이 영화의 원제는 <선한 자, 악한 자, 추한 자>이다. 하지만 그 세 부류를 명확하게 구분하며 어느 한편에 정의를 불어넣기보다는 셋의 욕망이 맞물리는 지점을 보여준다. 부에 대한 이해관계 앞에서는 누가 덜 비열한지를 가늠할 수는 있어도 누가 절대적으로 선한지를 판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배경이 남북전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보물을 찾으러 나선 이 셋의 여정 곳곳에 전쟁의 참상이 끼어든다는 점이다. 때때로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를 찾기 불가능한, 즉 선악이 공모하는 자본의 세계와 인간의 죽음 앞에서는 남과 북 어느 쪽도 정의로울 수 없는 전쟁의 세계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부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서부의 악인들과 정의를 내세우며 인간의 목숨을 떼로 앗아가는 전쟁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결국 모두가 탐욕적이다. <석양의 무법자>에는 그런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의 멋진 포즈 대신 현실에 대한 쓸쓸하고 체념어린 냉소가 있다.

영화는 극단적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하며 이해관계 앞에서 긴박해지는 각 캐릭터의 내면을 긴장감있게 담아낸다. 특히 후반부 묘지 시퀀스에서 세 남자가 삼각구도로 서서 총을 뽑아드는 순간을 결정하려는 그 찰나, 셋의 표정, 손, 얼굴 부분을 교차로 오가는 편집에서는 롱숏으로 이 셋을 한꺼번에 관망하고 싶은 욕구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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