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무엇보다 몸이 화두다. 뮤지컬이 각광받는 경향을 발빠르게 흡수한 모양인지 음악, 댄스, 마임, 그리고 다채로운 무술 동작들이 대사가 사라진 자리를 독차지했다. 국내에서도 <난타> <점프> 등 토종 창작 공연은 물론,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인 <스톰프> <스노우쇼>, 기존의 서커스를 한 차원 업그레드했다는 평가를 받은 ‘태양의 서커스’단의 <퀴담> 등이 차례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넌버벌 퍼포먼스를 찾아보기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진 지금, 또 하나의 창작 넌버벌 퍼포먼스가 등장했다. 올해 8월 영국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에서 공연했고 11월 서울에서 초연하는 댄스뮤지컬 <스핀오디세이>가 그것이다. 세계 최대의 비보이 축제인 ‘배틀 오브 더 이어’의 2005년 우승자 ‘라스트포원’을 주요 구성원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지난해 크게 유행한 비보이 열풍이나 <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와 같은 비보이 공연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묘하게도 호머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를 끌어들인다.
스크린 기능을 하는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 일단의 전사들이 뛰어든다.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오디세우스와 그 일당은 본디 그리스 편이었던 아폴론에게서 안전한 귀향의 길잡이인 ‘스핀’을 전달받지만, 고향인 이타카 섬으로 항해하던 중 소용돌이에 휩쓸려 스핀을 잃어버리고 만다. <스핀오디세이>를 채운 것은 스핀의 정신없는 행방을 좇는, 그보다 더 정신없는 오디세우스 일당의 발놀림이다. 스핀은 특정한 규칙없이 각종 소지품에 무차별적으로 스며들고, 전사들은 해당 물건을 빼앗기 위해 그 소유자와 싸운다. 이른바 스핀 쟁탈 토너먼트 경기다. 매번 무대에 오르는 인물들은 정체성도, 기술도 가지각색인데 환경미화원은 빗자리를 휘두르고, 축구공을 차는 아이는 발재간을 부리며, 농구선수들은 농구공을 재빠르게 주고받는 식이다. 대결 구도로 등장하는 오디세우스 일당 역시 이에 지지 않으려 각종 묘기를 부린다. 그중 가장 큰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이는 스님과 (여성을 회화화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야한 톱과 핫팬츠를 걸친 여장 남자로 비보이 크루를 배우로 내세운 만큼 아무래도 댄스가 가장 화려한 눈요깃감이다.
오랜 훈련을 거치지 않고서야 얻을 수 없는 애크러배틱한 몸짓들, 그리고 젊은 남성 댄서들의 생기가 매력이라면 이 공연의 단점은 플롯의 부재다. 혹은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그들에게서 직업이나 설정 외에 특별한 사연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 공연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그럼에도 라스트포원 멤버들이 무대의상을 제대로 갖춰입은 채 펼치는 앙코르 공연에선, 그들의 에너지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함성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진득하게 즐기려면 무대 커튼이 내려온 뒤에도 힘차게 박수를 치는 센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