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에는 미국 <CSI>에 있는 게 참 많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조선조 말기를 누비고 있는 ‘별순검’들은 현대의 거대 선진국 미국에 사는 CSI 요원들처럼 ‘DNA 조사 한방이면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다 나와!’라며 걸핏하면 입을 벌리라고 요구할 기술력도, 하다못해 면봉도 없다. 밧줄과 ‘금’(禁)자 적힌 종이 몇장을 붙여 사건 현장을 보호하기도 하고, 뚜껑을 열면 착착착 삼단으로 꺾이는 네모 상자에 이런저런 조사 도구를 상비하고 다니기도 한다. 게다가 이 박스를 꺼낼 때 은근히 특별수사대답게 폼도 잡아본다. 그러나 이들이 결정적인 발견의 수단으로 애용하는 기구는 기껏해야 돋보기다. 부검, 각종 실험 등을 담당하는 내근직과 수사, 증거수집, 심문 등을 병행하는 외근직으로 크게 구분돼 있는 조직도는 얼핏 CSI와 비슷해 보여도 시설구비, 인력지원 등에서는 턱없이 궁색하다. 시대와 공간의 차이에 따른 당연한 빈부 차지만 캐스팅, 촬영의 스케일 등 드라마 자체의 때깔도 미국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의 빈부 차를 여지없이 나타낸다.
지상파 방송에서 파일럿프로그램으로 발족됐다가 반응이 괜찮은 듯싶어 정규멤버로 등용됐지만 시청률이 신통치 않아 변덕스럽게 조기 퇴출당한 곡절의 드라마인 <별순검>은 현재 케이블 채널에서 2년 만에 부활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한밤중을 뛰고 있다.
그런데 이 돋보기를 든 조선의 국가공인 탐정들이 적나라하게 비교를 유도하는 <CSI> 초기 버전의 기술력으로 일단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CSI>를 능가하는 인간에 대한 관찰력과 통찰, 그리고 짜임새로 이단의 지성과 삼단의 감성까지 다 잡고 있다. 때로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류의 재연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단역진의 어색연기도 작렬하지만, 양파껍질처럼 사건의 진실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힌트와 발견을 탑재해 추리물의 재미를 쫀득하게 길어올리고 있는 솜씨는 제작과정의 소박함을 상쇄한다.
그리섬 반장보다 체격 훤칠한 총검 ‘승조’(류승룡)부터 비논리적인 허튼소리로 열혈 청년 ‘강우’(온주완)의 구박을 사는 ‘복근’(안내상)까지 순검 나리들은 버터 맛의 진하고 멋진 캐릭터를 그리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등신대의 진지함과 유머, 그리고 정의감을 발휘하며 골고루 사건해결에 제 몫을 담당해 담백하게 중독성을 지피고 있다. 고정 출연진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 개입과 지속적인 충성을 유도하는 ‘별순검’들의 ‘사내연애’ 같은 애정 전선도 사건과 맞물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슬쩍슬쩍 힌트를 주고 사뿐사뿐 진도를 내 내러티브의 균형감을 잘 유지하고 있다.
사랑, 오해, 복수, 한 등 한국형 테마에서 비롯한 사건을 주로 취급하는 <별순검>은 특히 사건의 전말을 드러낼 때 그 배경에 도사린 인간사의 안타까운 비극성을 갈무리하며 짠한 방점을 찍어준다. 파국에 이르는 에피소드들은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통속적이며 전형적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별순검’들은 어떤 사건의 진실을 안다는 게 범인을 정확하게 골라내면 끝인 ‘게임오버’의 성취가 아니라 선입견과 풍문에 가려져 몰랐던 인간의 이면을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알려준다. 그래서 더 정이 간다.
우리도 빵빵한 시스템과 돈만 있다면 미국 드라마의 뺨을 언제나 칠 수 있다는 말은 맞고도 틀리다. <별순검>을 보면 그 같은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 말마따나 될성부른 떡잎에 팍팍 지원을 가해 더 광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