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텔레비전의 미스터리 오락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재연 배우들 가운덴 한국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다. 에피소드의 배경이 한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일 땐 한국인 배우들이 한국어로 연기를 하고, 그 밖의 지역일 땐 외국인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를 한다. 외국인 배우들 가운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도 있는 듯, 말투가 천태만상이다. 또 전문 연기자가 아니니만큼, 대사말고도 연기가 전반적으로 썩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래도 비-아시아권 사회가 배경인 에피소드에 외국인 배우가 나와 영어로 연기를 하는 건 그 에피소드의 현실감을 높이는 데 얼마쯤 이바지한다. 유럽에서고 남아메리카에서고 죄다 영어만 쓰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에피소드에 따라 가장 알맞은 자연언어를 골라 이야기를 쓰는 것은 기술적 재정적으로 불가능할 게다), 이를테면 독일이나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에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 배우가 나왔을 때보다는 영어를 쓰는 외국인 배우가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더 큰 실감을 느끼며 이야기에 빨려들게 된다. 거기서 영어는 한국 바깥세상의 기호, 또는 동아시아 바깥세상의 기호다.
비평가가 아닌 평범한 영화 관객에겐 이야기에 몰입하는 게 복이다. 그 복을 방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배경과 서로 엇걸린 자연언어다.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피아니스트>는 배경이 오스트리아 빈이지만, 프랑스 배우들이 나와 프랑스어로 연기한다. 물론 등장인물들은 죄다 오스트리아 사람이므로 배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프랑스어는 독일어로 간주된다.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막에 의존해서 이 영화를 볼 때는, 장면의 현실감에 그리 큰 문제가 없다. 그에게 이 영화의 프랑스어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영어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 언어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볼 땐, 빈에서 빈 사람들이 쓰는 프랑스어 때문에, 그가 누리고자 하는 현실감이 훼손당한다. 멜 깁슨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출연한 배우들을 고생시키며 굳이 아람어와 라틴어를 쓰게 한 것은 ‘유식한’ 관객의 이런 현실감 해리를 막기 위해서였을 테다.
영화에서만은 아니지만 특히 영화에서, 영어는 진정한 보편어다. 할리우드영화가 미국이나 다른 영어권 사회만을 배경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 영화들은 공간적으로 지구 곳곳과 은하계 저편을 배경으로 삼는다. 어디서고 등장인물들은 영어를 쓴다. 영어는 단지 통-공간적일 뿐만 아니라 통-시간적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파라오도, 먼 미래의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영어를 쓴다. 사실 ‘유식한’ 관객의 회의가 공간적 합리성의 운산을 넘어 시간적 합리성의 운산에까지 미치면, 몰두해서 볼 영화가 없다. 영화 속에서 사자왕 리처드가 쓰는 현대 영어는 그의 현실감을 깨기에 충분하다. 실제의 사자왕 리처드가 썼던 영어는 현대 영어 사용자들에게 불가해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 시절 잉글랜드 왕실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고 프랑스어를 썼다. 이 모든 영화들에서 현대영어는 고대 이집트어로, 중세 노르망디의 프랑스어로, 은하계 저편 생물체의 미지 언어로 간주된다. 그렇게 간주해야만 이야기에 빨려들 수 있다. 그 영어를 그저 통역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이겠거니 여기지 않으면, 몰입의 복을 누릴 수 없다.
영어권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도 상업적 타산에 따라 영어로 만들어지는 일이 많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그래서 일상적으로는 영어를 쓰지 않을 배우들도 그런 영화 속에선 영어를 쓴다. 그들 가운데 어떤 배우들의 영어는, 영어권에 살아보지 않아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내 귀에도, 방언적 허용 너머에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관객은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훨씬 더 예민하게 느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배우들에게 편한 언어로 영화를 만들고 자막을 다는 게 낫지 않을까? 대사는 연기의 중요한 부분이다. 배우의 뛰어난 자질 가운데 하나는 대사 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이다. 영어권 바깥 사회에서 어설픈 영어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실감을 훼손하는 데서 더 나아가, 연기의 그 중요한 부분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에피소드별로 배우의 인종과 언어를 바꾸듯, 적지 않은 할리우드영화가 현실감을 높이려 중간에 언어를 뒤섞기도 한다.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스파이영화에서 소련 스파이들(물론 미국인 배우다)은 이따금 러시아어를 쓴다. 영화 <대부>의 마피아들은 저희들끼리 더러 이탈리아어로 얘기한다. 그 등장인물에게 러시아어나 이탈리아어는 모국어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러시아 사람이나 이탈리아 사람 귀에 그 미국 배우들의 러시아어나 이탈리아어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릴까 하는 궁금증. 혹시 ‘깨는’ 것 아닐까? 이리 지레짐작하는 것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끔 듣는 한국어가 도무지 한국어답지 않은, ‘깨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현실감에 관한 한 차라리 무성영화 때가 나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