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촬영현장 습격] 김대승 감독의 신작 <연인> 청도 촬영장

중년의 두 배우, 호흡이 척척

경북 청도군 청도읍의 조용한 주택가, 남녀노소 주민들이 목을 길게 뺀 채 어딘가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들의 애타는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보면 아담한 2층집이 보인다. 분주히 들락거리는 스탭들, 집 안으로 연결된 케이블선들, 그리고 무엇보다 담 밖으로 흘러나오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이곳이 김대승 감독의 신작 <연인>의 촬영장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니 김 감독….” 모니터를 보며 점잖게 말을 꺼내던 백윤식이 눈길을 돌린다. “그럼 이번 신은 끝난 건가?” 귀에 익은 이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곁에 앉아 있던 김미숙이다. 20년은 족히 됐을 이 단독주택에 깃든 <연인>의 두 주인공 백윤식과 김미숙은 실제로 집주인인 양 보였다.

10월3일 촬영을 시작한 <연인>은 10월19일 10회차를 맞고 있었다. 그 사이 몇 차례 비가 내렸고 영화산업노조와의 합의에 따라 1주일에 하루씩 쉬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빠른 속도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이날 촬영은 신 2개를 소화해야 하는 탓에 바삐 진행됐다. 해 지기 전에 신 하나를 끝낸 촬영진은 날이 어둑해지자 딸인 영우(김혜나)의 결혼을 앞둔 상걸(백윤식)과 정희(김미숙)가 함을 받는 장면(신 2)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대승 감독은 컷마다 첫 테이크나 두 번째 테이크에서 바로 “오케이!”를 외치고 있다. 어떤 컷에선 감독이 배우들에게 “저는 오케이인데, 어떻게… 한번 더 갈까요?”라고 물을 정도니, 아무리 동이 트기 전까지 10여컷을 찍어야 한다지만 이건 너무 시간에 쫓기는 것 아닌가. 하지만 김대승 감독은 “감정신이 아니라 잔칫집의 즐거운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빨리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잖나.”

감독의 말마따나 백윤식과 김미숙, 두 배우의 연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듯하다. 두 배우는 앵글 안에서는 물론이고 쉬는 시간에도 오랜 친구 혹은 동료처럼 느껴졌다. 김미숙이 “지금 배경이 여름인데 양복 저고리를 입고 있어야 하나?”라고 묻고 백윤식이 “더워도 참는 거지, 이런 날은~”이라고 대꾸하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터지는 백윤식의 유머와 김미숙의 여유있는 대꾸는 새벽까지 비좁은 집 안에서 작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스탭들의 피로를 덜어주는 듯 보였다. 김대승 감독은 “두분이 현장에서 연배로 넘버 원, 넘버 투인데 중심을 잡아주신다”며 대단한 만족감을 드러낸다. 이 와중에 백윤식은 “세상의 어느 애비가 딸 함 받는 날 마른입에 밥 먹냐?”라는 대사를 “맨밥 처먹냐?” “마른입에… 풀칠해?”라면서 귀여운 NG를 내고 있다. 배우며 스탭이며 깔깔거리고 웃고 있는데 김대승 감독이 조금은 비장하게 “이게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행복한 장면”이라고 말한다. 이제 상걸은 정희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다가올 아내의 부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록있는 두 중년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빛나는 사랑의 진실을 들춰낼 <연인>은 내년 1월까지 촬영을 진행하게 된다.

요즘 어때요?

“노조와의 협약이 처음 적용되는 현장이라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특히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쉬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나 스스로 지키려고 하지만 배우의 감정이 고양된 상황에서는 촬영을 할 수밖에 없잖나. 그런데 다행히 노조도 이런 것으로는 문제제기하지 않는다. 결국 노조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것 같다.”_김대승 감독

김대승 감독 인터뷰

“이 영화는 현실과 회상, 판타지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주연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백윤식 선생님은 연기력은 기본이고 인지도도 높으니까 별 고민이 없었다. 김미숙 선배님 또한 <말아톤>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연기력에서는 믿을 만한 분이다. 사실 극중 설정이 50대 중반의 부부인데, 백 선생님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을 연기했고 김미숙 선배님은 아직 50대 중반이 아니라서 선뜻 결정하긴 어려우셨을 것이다. 김미숙 선배님은 “김 감독, 다음 작품에서는 좀 젊게 해줘”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셨다.

-경북 지역에서 로케이션을 하기로 한 이유는. =경상도 남성들은 잔정이 없고 엄격하면서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정을 품고 있다. 절과 고택들도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느낌이 영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경북을 7~8개월 이상 돌아다니면서 헌팅을 했다. 상걸이 일하는 곳은 예천군청에서, 집은 청도, 도심은 안동과 영주, 사찰은 봉화와 경주 등에서 촬영하게 됐다.

-비주얼 컨셉은 어떤 것인가. =촬영이 불편하더라도 되도록이면 시간의 때가 묻어 있는 실제 생활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촬영을 위해 손을 대더라도 조금씩만 바꿔서 삶의 흔적을 비추려 한다.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을 해온 신점희 미술감독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존재감과 부재감의 이야기다. 수십년 동안 공기나 물처럼 아내의 중요함을 모르던 한 남자가 아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그 부재를 느끼는 과정을 담을 거다. 상걸은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녀를 마음속에서 복원해내는데, 단청 복원이라든가 여러 은유를 통해 표현된다.

-시간을 중요한 영화적 장치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리얼하고 엄중한 현실과 그 현실을 피하려는 회상, 판타지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현실과 회상, 회상과 판타지의 벽을 무너뜨리고 현실과 판타지의 벽도 허무는 일을 해보고 싶다. 물론 그것은 모두 시간의 축약, 뒤섞임 등과 관련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