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산에 ‘한류우드 부지’라는 푯말이 붙었을 때 나는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다. 나중에 그것이 인도의 발리우드(Bombay+Hollywood의 합성어)처럼 한류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인 것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때는 천박한 조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한류’라는 말은 이제 꽤나 익숙한 말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중국이나 몽골을 여행했을 때 우리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를 음식점이나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유행에 민감한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는 가요를 흥얼대기도 했다. 아시아의 대중문화를 한국이 이끈다는 한류에 대한 흥분이 있는가 하면 한류를 좀더 지속가능한 기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리고 2007년 8월15일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과 승려들이 반정부 시위를 펼쳤다. 그 뒤 한달이 지난 9월29일 미얀마 군부는 최소한의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정부 발표 13명, 그러나 실제로는 2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외신으로 전해오는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80년 광주를 떠올린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의 한류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미얀마의 인권에 대해, 아니 아시아에 대해 과연 우리의 한류는 어떤 생각을 하며 행동하고 있는가? 음반 몇장 팔고, 드라마 몇편 수출해서 자국의 대중문화를 대외에 과시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 한류를 생각한다면 한류는 아시아와 함께하는 기획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아시아를 한번 둘러보자.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남북이 평화협정을 이루지도 못하고 정전 상태에 빠져 있으며, 일본의 우익들은 남의 역사는 물론 자국의 역사마저 왜곡하여 오키나와 시민들의 자존을 사정없이 짓밟고 있다. 난사군도 해역은 천연가스의 부존 가능성이 제기되며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등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이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미얀마는 이번의 반군부 시위 이면에 뿌리 깊은 종족적 저항이 존재했다. 중국, 라오스,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얀마 동부 국경지역은 카렌, 카친, 샨, 친 등의 소수민족 반군들이 독립을 주장하며 정부군과 무장투쟁을 지속하고 있고, 네팔은 마오이스트들의 끈질긴 저항이, 티벳에서는 중국군에 의해 무차별적인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이 밖에도 캐시미르,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에서 끝없는 내분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는 그야말로 크고 작은 분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리고 이 분쟁의 속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20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의 칼날이 번득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그 가장 마지막에 그어진 칼날이 바로 한반도의 38선과 휴전선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비록 미국은 아직까지도 정치적 이유로 군사행동을 일삼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아시아의 자원을 노리고 아시아의 분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거기에는 유감스럽게 한국 기업도 끼어들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가스전 개발을 위해 2000년 이후 1억5000만달러가량을 투자했다. 투자만 했으면 좋았겠지만 개발권을 얻기 위해 미얀마 군부에 폭탄 신관(폭발제어장치)을 만들 수 있는 관련 설비와 기술을 불법으로 유출시켰다. 미얀마 군부의 학정에 대해 광주의 기억을 떠올리며 치를 떠는 우리가 그들의 정권을 연장하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우리의 한류가 이 점을 상기한다면 우리의 한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한다. 아시아를 상대로 돈을 벌어들이는 단순한 장사치의 모습에서 아시아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류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식사회가 나서야 한다. 지금도 많은 국제교류를 위한 소모임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좀더 적극적인 정치적 연대가 필요하며, 좀더 적극적인 문화·역사적 참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아시아에 대해 발견하지 않으면 우리의 길도 식민지적 정체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인식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대중문화로서의 한류를 생각해보자. 거기에 아시아가 있다면, 이번에는 아시아가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