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개념, 무형식, 무스타 등 3무(無)을 표방하며 MBC <무한도전>의 대항마로 지난 9월22일 출격한 SBS 토요버라이어티프로그램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은 언뜻 ‘눈에는 눈’의 맞불 전략을 구사 중인 것처럼 보이며 예능프로그램의 최신 경향을 따끈하게 대변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일본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움직이는 벽’까지 수입(?)해 준비된 아이디어와 잘 짜인 형식의 힘을 발휘하려 했지만 실패한 전례(<작렬! 정신통일>)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이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식 ‘리얼리티’와 ‘빈틈 많은’ 캐릭터들의 단체 플레이를 한층 강도높게 사냥하고 있다. 이번에도 일본 TBS <링컨> 등 옆나라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료를 차용한 흔적이 다분하다. 그러나 더블 MC인 이경규와 김용만을 비롯해 김구라, 신정환, 윤정수, 김경민 등 출연진이 매주 어디에서 어떻게 톡톡 튀는 아이템을 소화하느냐보다 얼마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막 노느냐가 더 중요한 터라 ‘못난 따라쟁이’라는 논점은 일단 제쳐도 무방할 듯싶다.
<…라인업>은 이른바 ‘짠 개그’에 대한 거부반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웃기려는 의도, 연출 등의 흔적이 나타나면 ‘너 때문에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1% 더 올라하게 생겼다’고 대놓고 면박을 준다. 대신 B급을 자처한 이들이 ‘리얼리티’를 위해 택한 것은 다른 사람의 못난 곳, 아픈 곳을 들춰 망신을 주는 애드리브의 속공이고, 거침없는 수다의 카니발이다.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라는, 출연진 모두가 서로 말하느라 정신없는 또 하나의 ‘무’(無)투성이 토크쇼에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김구라는 각본없는 ‘프리스타일’의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물 만난 고기마냥 ‘독설가’, ‘욕쟁이’ 등의 캐릭터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물론 강아지 그림을 덧붙인 ‘새끼야’라는 욕설까지 내뱉어 ‘가족들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어디 무엄하게’라는 준엄한 꾸짖음도 된통 들었지만 말이다. 아예 막장 버라이어티라는 고약한 정체성도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 반말은 기본이다.‘야’, ‘개미라도 퍼먹든지’, ‘별 나부랭이’, ‘난쟁이’ 등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언행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김구라의 욕설방송 이후 제작진은 사과문까지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실제로는 더 심한 욕도 입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 ‘리얼리티’ 한번 제대로 하겠다는데 너무 혼내시는 것 아니냐고 속으로 야속해했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이 멋진 폼 잡지 않고, ‘우리도 똑같이 웃통 벗고 논다’를 외치며 사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엿보기와 공감의 쾌감을 적잖게 자극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전제한 ‘리얼리티’에는 친밀하다는 게 얼마든지 타인의 영역을 넘나들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예의없음과 일맥상통한다는 착각이 담겨 있다. 프리스타일의 개그와 유희가, 치밀하고 창의적인 ‘얘깃거리’의 제조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짠 개그’를 통달한 다음에야 가능한 고수의 영역이라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유명인에 대한 엿보기로 시청자를 몰입과 쾌감의 롤러코스터에 태우려면 해당 예능인의 재능과 노력에 대해 기본적인 존경심을 자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연민과 애정과 웃음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호감있는 캐릭터로서 존재해야 한다.
<…라인업>은 <무한도전>과 닮은 듯 닮지 않았다. 단지 뭔가 앞과 뒤, 위와 아래를 거꾸로 입은 듯한 놀림거리의 자학성만 강하게 풍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