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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자의 윤리, <타인의 삶>

캐치온 10월19일 오후 5시40분

1984년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뮈에)는 극작가 드라이만의 일상을 비밀리에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국가의 부름에 충직하게 따르는 비즐러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반복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새 드라이만과 그의 부인이자 여배우인 크리스티나의 삶은 관찰과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 된다. 그건 비즐러가 정치적인 신념 혹은 이성을 넘어서 이 타인들의 삶에 ‘마음’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호한 대답이겠지만, 아마도 그가 드라이만의 삶에서 본 것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티나에게서 비즐러는 자기 안의 ‘인간’을 본다. 우리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른다.

일찍이 에드먼드 버크는 공감의 정념이 자기보존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말하자면 타인의 불행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은 자신이 그 불행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감은 결국 타자를 거쳐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정념이다. 그런데 비즐러의 선택과 행위가 숭고한 이유는 타인의 삶에 대한 그의 공감이 그 거리를 균열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침해가 관음증적 호기심으로, 호기심이 공감으로, 공감이 책임감으로, 그리고 결국 그 책임감이 고통으로 변할 때, 비즐러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기 연민 혹은 자기 안위적인 공감에서 고통 그 자체의 공감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행위다. 타인의 고통을 보는 고통을 피하기 위한 공감이 아니라, 그 고통을 끝끝내 외면할 수 없어서 고통 속에서 살기를 택하는 것.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영화의 마지막, 독일이 통일된 뒤, 비즐러와 드라이만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 모습이 담담히 펼쳐질 때다. 그는 드라이만이 통일 이후 쓴 책의 서문에 한줄로 남겨질 뿐, 기억되지 않는 초라한 우체부로 살아간다. 비즐러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전히 자기 것을 지키며 눈물짓는 대신 아래로 내려왔다. 타인의 삶은 그의 마음에 잠시 몰아친 요동이 아니다. 그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공감의 윤리란 의도적으로든 결과적으로든 주체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때,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말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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