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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욕하면서 보게 될까

<소문난 칠공주> 문영남 작가의 80부작 대하 불륜드라마 SBS <조강지처클럽>

<조강지처클럽>은 미니시리즈류가 주로 배정을 받아온 SBS 주말 밤 10시대에 무려 80부를 소화하라는 이례적인 명을 받고 지난 9월29일 출항의 팡파르를 울렸다. 10년 만(아니, 그렇게 오래됐더란 말인가?)에 돌아온 오현경의 주연작으로도 사전 주목률을 높인 이 드라마는 분량으로 따지면 ‘대하 생활드라마’라는 별칭도 붙여줄 만할 것이다. <장밋빛 인생> <소문난 칠공주> 등으로 어김없이 방송사를 함박 웃게 만든 문영남 작가가 펜을 들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장기 레이스를 연 주요 배경이다.

<조강지처클럽>

이번에도 결혼한 뒤 배우자의 바람과 배신으로 속이 시커멓게 탄 언니들의 역정이 그려진다. ‘복수’(김혜선)와 ‘화신’(오현경)이라는, 친구이자 시누이-올케 사이인 두 조강지처는 일단 울며불며 악을 쓰다 ‘멍’하고 ‘퀭’한 정신의 공동화 현상도 겪은 다음, 조강지처클럽을 결성해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날 참이다. <장밋빛 인생>에서 조강지처를 버린 ‘반성문’ 손현주는 부인과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몸까지 망가진, 애처로운 기러기 아빠 ‘길억’으로 변신해 반성문 많이 쓴 티를 내고 있다. 요 대목은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문 작가의 사회적인 분신. 어처구니없는 사회현상이 빚어낸 가정파괴의 비극을 다루겠다는 공익적인 욕심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3회 말미에서는 떨어져 살다보니 몸도, 마음도 멀어지더라며 역시 부부는 살 맞대고 지지고 볶아야 한다는 길억의 하소연과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토하는 친구의 맞장구를 보여주며 공공의 일장연설 같은 정공법의 호소력을 엿보였다. 조강지처클럽을 결성할 여성들이 같이 산다고 해서 꼭 해로하는 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차에 한 지붕 드라마에서 나온 ‘동상이몽’의 부부론은 이래도 저래도 파국으로 치닫는 부부관계의 난해함만 가중시켰다.

스토리와 캐릭터를 드러내는 특유의 배역 작명법을 또 발휘한 문 작가는 “왜 상처투성이 균열이 일어나는가”와 같은 결혼제도에 대한 통찰은 제쳐둔다. 초반부터 구획정리가 화끈한 이분법의 캐릭터들과 처절한 눈물신으로 ‘어쩜, 저럴 수가’의 분노와 ‘아이고아이고’의 한숨을 자아내며 ‘신파의 롤러코스터’로 속도를 내고 있다. 착한 진영은 생선을 팔며 의사 남편을 서포트해온 ‘복수’, 순진한 조강지처 ‘화신’, ‘길억’ 등이고, 나쁜 진영은 ‘한원수’(안내상), ‘이기적’(오대규) 같은 불륜의 남편들을 비롯해 정나미 뚝 떨어지는 ‘길억’의 아내 ‘정나미’(변정민) 등이다. 착한 진영은 눈치없는 헌신과 인내로 피해자의 가련함을 극대화하고 있고, 나쁜 진영은 뻔뻔한 스킨십, 느끼한 애정고백, 속물 냄새 나는 멸시 등으로 ‘못돼먹은 기질’을 드러내고 있다.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밀고 당기기의 완급 조절이 가능한 ‘백년 묵은 구렁이’급 작가들의 작품에서 가치관의 혁신적인 변화를 엿보겠다는 것은 과욕. 인간의 저열함과 인간관계의 징글징글함을 대책없는 적나라함과 단순함으로 드러내온 작가의 특징은 이번 드라마에서도 여지없이 ‘내가 어떻게 변하니?’를 외치는 듯 보인다. 전작인 <소문난 칠공주>의 출연진이 대거 이동해와 어르신 시청자에게 혼란스러운 기시감을 야기하는 것은 그 한결같음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보너스다. 악명이 무명보다 낫다는 흥행론을 입증해온 작가 중 한명으로서 다시 한번 그 불가사의한 시청 행태를 증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