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경이롭게 강한 동시에, 완벽하게 무력하다. 그가 눈을 열면, 그 영혼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폴 해기스)

“그는 제임스 딘과 같다. 유연하고, 아름다운.”(존 싱글턴)

“그는 강하고, 육체적인 동시에 당신의 가슴을 섬세함으로 찢어놓을 수 있는 남자다.”(닐 조던)

그가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지는 몰라도 행복한 남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적어도 최근 2년 동안 테렌스 하워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남자였다. <크래쉬>와 <허슬 앤 플로우>. 두편의 영화로 돌풍처럼 들이닥친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삶을 온통 장밋빛으로 바꾸어놓았다. 점심 식사 중에 조지 클루니가 다가와 “영화 잘 봤다”며 인사를 건네고, 언론은 “새로운 덴젤 워싱턴”에 앞다투어 헤드라인을 할애했다. 그리고 열기에 기름을 끼얹듯 조디 포스터가 다가왔다. “내가 지난해 본 최고의 영화 두편에 당신이 모두 나왔어요. <크래쉬>와 <허슬 앤 플로우>. 언제 함께 일하고 싶군요.” 넋이 나간 듯 말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던 하워드에게 정말로 얼마 뒤 <브레이브 원>의 출연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즉각 화답했다. “닐 조던 감독, 조디 포스터와 일한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솔직히 난 내가 16살짜리 여자애를 연기하는지, 원더우먼을 연기하는지도 몰랐다. (웃음)” 사실 닐 조던에게 테렌스 하워드는 원더우먼 이상이었을지 모른다. 각본에 이탈리아 남자로 설정돼 있던 형사 캐릭터를 단지 그를 영입하기 위해 흑인으로 바꾸었으니. 범인의 숨통을 조이는 대신 묘한 유대의 공명을 형성하는 <브레이브 원>의 형사 머서는 용의자를 추궁하는 언어의 단호함 속에서도 애원하듯 동요하는 테렌스 하워드의 눈빛을 통해 매혹적인 숨을 얻었다.

스스로 상류층의 삶에 속해 있다고 자부해왔으되, 어느 날 백인 경찰에 모욕당하는 아내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남자. 테렌스 하워드에게 처음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안긴 것은 <크래쉬>의 흑인 프로듀서 역할이었다. “발견”이라는 간지러운 수식어가 금세 따라붙었지만, 그가 20여년 동안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해온 배우임을 의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날 천재라고 생각하게 내버려둬라. 하룻밤 사이에 성공했다고. 그들의 판타지를 깨고 싶지는 않다.” 사실 <빅 마마 하우스> <엔젤 아이즈> <하트의 전쟁> <레이> 등 메이저영화에서 그는 언제나 전형적인 악당 혹은 무난한 배경을 벗어나지 않는 남자였고, <톨 호프스> <스파크> 등 기회를 잡았다 싶었던 TV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낮은 시청률로 종영의 운명을 맞이했다. “다섯달 일한 나보다 브루스 윌리스가 한주 일해서 가져가는 돈이 더 많다는 것”에 울컥해하던 설움의 조연에게 “래퍼가 되고 싶어하는 포주” 역할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 그가 진절머리부터 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업계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인가? 내가 연기할 수 있는 건 결국 포주 따위밖에 없다는 건가? 그때 난 정말로 상처받았다.” 다행히도 그의 속단은 대본을 읽은 뒤 금세 방향을 틀었다. 2년 동안 무려 123명의 포주와의 만남을 거쳐 탄생한 <허슬 앤 플로우>의 디제이는 징글징글한 저열함마저 사랑하게 만드는 진한 생명력을 발산했고, 열광적인 찬사의 세례를 받았다. 테렌스 하워드의 이름이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와 함께 언급됐고, 그는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37살이나 먹은 주제에… 소식을 듣고 침대 위에서 10살짜리 애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시상식날은 혹시라도 늦잠을 잘까봐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웃음)”

유명세를 얻은 뒤 테렌스 하워드의 뒤를 따라붙은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한결같았다. “갑자기 유명해진 기분이 어때요?”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20년 동안 조연만 맡아서 다행이다. 마침내 때가 왔을 때, 최고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그는 종종 자신을 “학생”에 비유한다. 순식간에 거세진 스타덤의 파고가 “졸업생 대표가 된 것”과 같다면, 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졸업, 그 뒤의 삶이다. “나를 단지 배우로만 보지 마라. 나는 예술가이고, 모든 예술가는 성장해야 한다.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기 위해 끝없이 도전해야 한다.” 싱어송라이터에서 연출가까지, 하워드가 욕심을 내는 분야는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도전은 연기도, 연출도 아닌 인간 테렌스 하워드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을 질료로 자화상을 그리는 중이다. 난 당신에게 내가 언젠가 감독이 되어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더 나은 인간(better human being)이 되어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