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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과의 소통을 두려워말라
ibuti 2007-10-12

<무단침입> Breaking and Entering

영국영화협회 회장인 앤서니 밍겔라가 정작 영국이 배경인 영화를 거의 찍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밍겔라는 <무단침입>을 찍으면서 데뷔작 <유령과의 사랑> 이후 오랜만에 런던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직접 쓴 오리지널 각본으로 작업한 것 역시 데뷔작 이후 처음이었으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을 법하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가족 출신인 밍겔라는 어렸을 때 힘들게 살았으나, 성공한 예술가의 삶을 사는 지금의 그에게 빈민가의 삶을 접할 기회는 드물다. 밍겔라는 다양한 언어와 민족과 계층이 혼재하는 바깥세상과는 상관없는 양 좁은 영역 안에 묻혀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뒤 고백하듯이 <무단침입>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익숙한 행동반경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번 겪고 나면 그동안 무지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무단침입>은 범인을 찾는 스릴러가 아니라, 무단침입으로 인해 삶의 다른 면과 맞닥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런던 북부의 우범지대인 킹스크로스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책임진 건축가 윌은 자폐증에 걸린 딸을 둔 리브와 10년째 동거 중이다. 새로 연 사무실이 연이어 털리자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하던 그는 절도범 소년 미로를 뒤쫓는 데 성공한다. 리브와의 무기력한 생활에 지친 윌은 미로가 사는 공간에 호기심을 느끼고, 미로의 엄마 아미라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무단침입>에는 수많은 경계가 있다. 그러나 경계 양쪽의 삶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소통의 부재는 현실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밍겔라는 제목 그대로 서로가 경계를 부수고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야말로 문제해결의 시발점이라고 본다. <무단침입>은 물질적으로 풍족하나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사는 사람과 가난하지만 삶의 의지로 충만한 사람의 만남이 도식적인 묘사를 피해, 시적 운율이 느껴질 만큼 고상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무단침입>의 음악을 공동으로 진행한 가브리엘 야레와 언더월드는 마지막 곡으로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선택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 뮤지션의 음악이 균열보다 조화를 이룬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 도착한 이질적인 인물들은 자신의 위치를 양보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며 감동을 이끌어낸다. 영화의 중심엔 영국 남자 윌이 놓여 있지만, 그의 양옆에서 균형을 잡는 인물은 스웨덴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각각 남편을 두고 온 리브와 아미라다. 두 사람은 자식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타인으로 확산된 애정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는 걸 밝혀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의 모호한 점들에 대해 궁금했다면 밍겔라가 맡은 DVD의 음성해설을 들어봐야 한다. 15년 전에 써둔 각본을 되살려 <무단침입>을 만든 밍겔라는 잡다한 이야기를 빼는 대신 영화의 주제에 관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흐를 예술가의 큰 스승으로 꼽는다는 밍겔라는 음성해설을 하기 전 두 시간에 걸쳐 바흐의 음악을 들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목소리에서 엄숙함과 온화함이 묻어난다. <무단침입>을 촬영할 2005년 여름 당시 런던은 폭탄 테러 및 위협이 상존하던 위험한 도시였다. 그런 장소에서 이렇게 정돈된 작품을 만들어낸 밍겔라는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무단침입>의 도덕적 주제를 더 잘 다뤘을 거라며 오히려 그에게 빚진 기분이라고 말한다. 참 겸손한 사람이다. 메이킹 필름(13분), 6개의 삭제장면(9분), 예고편 등의 부록은 평범한 편인데, 삭제장면의 음성해설 중 밍겔라의 언급이 뜻밖이다. 최선이라 생각되는 장면만을 남겨 최종 편집판을 내놓는 감독으로서 삭제장면을 DVD에 수록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가 고전적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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