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공관에 설치된 1000호 크기 소나무 작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난히 아꼈던 화가라고 잘 알려진 강연균(65) 화백. 그는 45년째 수채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물로 그리는 수채화야말로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예술”이라고 말하는 그의 수채화 사랑은 유별나다. 그래서일까,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자리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라는 <노자도덕경>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수채화는 미술을 처음 접하게 되는 첫 관문. 어릴 적 미술 수업을 통해 수채화를 그려보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림을 이해하고 친숙해지는 데 수채화만한 화법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편하게 수채화를 다룬다고 해서 수채화가 다른 미술 기법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무궁무진한 응용기법을 가장 많이 지닌 것 또한 수채화일 것이다. 가령 수채화는 맑고 청명한 투명 채색부터 진중하고 깊이감이 넘치는 불투명 채색까지 그 폭이 깊고 넓다. 최근엔 구상과 비구상 혹은 실험적이고 다양한 수채화 작품들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미술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가장 오래된 아름다움의 표현법이 수채화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닐 듯싶다. 국내 화단에선 그런 수채화를 보급하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많은 애호가를 매료시킨 주인공 중 강연균 화백은 단연 돋보이는 중심적인 작가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그의 남다른 수채화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강 화백은 정답고 걸쭉한 광주 사투리를 구사하는 전라도 토박이. 출품된 작품들 역시 ‘남도’의 땅과 사람들, 그리고 친숙했던 일상의 빛과 어둠을 감각적인 수채화 필치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사생화가’라는 비유처럼 그는 현장에서의 생생한 체험을 화폭에 즐겨 담는다. 담양, 나주, 화순 동복, 순창 매향리, 구례 산동, 여수 사도 등 그의 예리한 붓 끝에 포착된 풍경은 장소를 옮겨 이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손끝에 닿은 그 풍경들은 마치 깨끗한 물에 방금 씻어낸 듯 생생하다. 그리고 소재로 선택된 모과 한 덩어리에서도 시공간을 초월한 세월의 깊이가 담겼다. 회화적인 감흥이 넘실대는 향나무, 대형 화폭을 차지하고 앉은 모란꽃의 향연,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어느 시골 변두리의 정미소….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강 화백이 20년 넘게 소장하면서 틈틈이 그려왔다는 나한의 얼굴이다. 몸이 없는 나한의 얼굴은 작품 제목인 ‘무심’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으로 갈린 불두(佛頭)를 정밀하게 스케치한 위에, 동일계열 색조의 점묘로 배경을 가득 채워 넣은 담채기법은 강연균 화백의 수채화에 대한 열망과 집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상업화랑에서 14년 만에 갖는 이번 전시에는 신작 40여점이 선보인다. 최근엔 미술품 경매에도 작품이 나와 높은 가격에 낙찰될 정도로 새로운 진가를 재평가받고 있다. 환갑을 훌쩍 넘어선 화백의 유연하고 깊이있는 수채화의 세계는 지금의 가을서정과도 너무나 잘 어울릴 듯싶다(문의: 02-732-3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