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이란 용어는 영국의 미술 행정가 존 윌렛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시기에 건축계에서는 예술가로서의 건축가가 아닌 사용자 중심(Action Planning)의 설계방법이 등장했고, 의료계에서도 의사 중심의 의료체계에서 환자 중심의 의료체계(People-centered medicine)로, 건축이나 미술, 의료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공공성’이란 개념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던 공동체적 가치를 찾는 이러한 노력은 이후 유럽을 열정의 시대로 몰아넣었던 ‘68혁명’으로 표출된다.
당연히 존 윌렛의 ‘공공미술’은 전시장 안에 갇힌 미술품들을 바깥으로 끌어내려는 단순한 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윌렛은 전시장 안의 미술과 전시장 밖의 미술을 철저하게 구분하며 ‘공공미술’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즉, 전시장 미술이 화상과 큐레이터, 컬렉터 등의 소수의 전문가들을 위한 미술이라면, ‘공공미술’은 일반인의 정서에 부합하고 그들의 정서에 개입하는 미술이었다. 이 구분을 통해 윌렛이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전문가들이 전시장 미술을 통해 자신들이 마치 일반 대중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소수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공미술’은 대중도 미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미술은 소수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반발이었다. 따라서 ‘공공미술’은 기존의 정의에 대한 반발이며 미술에 대한 재정의를 꾀하는 ‘운동’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윌렛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 공공미술은 새로운 정의를 찾아가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경우 뒤늦게 공공미술이란 개념이 들어와 대중적으로 확산된 지 불과 몇년 사이지만 사실은 이미 법으로 일정 건축물 이상에 대해 미술품 장식을 의무화하고 있었다. 문화예술진흥법을 보면 연면적 1만㎡ 이상의 건물을 신축할 때 총공사비의 1%를 미술작품 설치에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건축주가 건물에 미술품을 설치하고 싶지 않다면 건축비의 0.7%를 공공미술 기금으로 내놓으면 된다. 이른바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미술장식품 시장은 1997년에 315억원대에 달했고, 지금은 어림잡아 800억원대를 추정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미술의 질은 어떤가? 아직도 공공미술에 대한 정의를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이냐, 공공을 위한 미술이냐로 헷갈리고, 미술에 대한 이해없이 법조문에 의해 설치된 미술품들은 수준 이하의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 600년 역사를 이어온 종로거리에 들어선 고층빌딩 앞에 설치된 미술품들을 보라. 소재에 대한 고민도 없고, 주제의식도 없다. 그저 화상과 심의위원들과 건축주의 적당한 타협선만 보인다. 그저 종로가 아까울 뿐이다.
그런가 하면 전시장 미술의 한계를 느끼고 공공의 영역으로 자신의 작품을 들고 나온 미술인들이 있다. 이들은 좀더 다양한 공간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들고 대중과 소통하려고 한다. 이들의 작업은 전시장의 흰벽에 걸려 있는 뚜렷한 존재감이 있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의 작업은 찰나적이며, 좀더 개념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다. 그러나 전시장을 뛰쳐나온 이들의 작업 역시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대중을 설득한다는 점에서 사실 전시장 미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그들에게는 기존의 것과는 뭔가 다른 존재감이 필요했거나, 좀더 넓은 전시장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런 행위를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의 공공미술은 이렇게 공공적인 장소를 점유하여 자신의 작가적 관점을 알아봐줄(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지만) 대중이나, 다른 작가들이나, 아니면 평론가들에게 애원하는데 불과하다. 우리의 공공미술은 우리 모두가 즐겨야 할 미술에 대한 고민이 없다.
나는 공공미술은 반드시 그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와 무관할 수 없으며, 그 지역의 주민들과 무관할 수 없고, 분명한 이데올로기와 무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공미술의 예술가는 때로는 단순한 기록자가 될 수도 있으며, 노동자가 되기도 해야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담당 관리들과 테이블에 마주 앉는 협상자가 되기도 해야 하며, 아주 절실하게 엔지니어가 되기도 하며, 엔지니어와 대화할 때는 건축가가 되기도 해야 하는, 오지랖 넓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이 ‘오지라퍼’야말로 더 낮은 예술가로서 더 넓은 공공미술의 영역을 확대하는 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