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duation> 카니예 웨스트/ 유니버설뮤직 발매
탁월한 힙합 아티스트란, 과장되게 말하자면 샘플의 고고학(정보와 발굴)과 샘플의 계보학(배치와 맥락)에 통달한 이들이다. 남들이 잘 몰랐던 곡에서 누구의 귀에나 쏙 들어오는 샘플 뭉치를 뽑아내거나 누구나 들어본 곡에서 처음 듣는 것 같은 신선함을 추출하기도 한다. 힙합 아티스트는 그 샘플들을 촘촘히, 혹은 헐겁게, 혹은 날것으로, 혹은 두텁게, 혹은 가볍게 배치하면서 듣는 이들과 일종의 음악적 게임을 벌인다.
카니예 웨스트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고고학자이자 감각적인 계보학자다. 샘플을 고르고 재조직하고 배치하는 데 있어 그만큼 발군의 능력을 보이는 힙합 뮤지션은 흔하지 않다. 그가 발표한 두장의 음반(<The College Dropout>(2004), <Late Registration>(2005))에서 웨스트는 클래식 솔의 풍성한 아우라와 현대적인 비트 감각을 접목한, 햇볕에 잘 말린 이불처럼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힙합 음악을 만들었다. 이 음반들은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거기다 그의 ‘입바른’ 행보까지 고려한다면 그가 현재 미국 힙합의 ‘빅 마우스’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자퇴’했다가 ‘복학’했으니 이제는 ‘졸업’할 차례다(그는 실제로 시카고주립대학을 자퇴했다). 졸업 파티를 위해 웨스트는 빵빵한 ‘샘플 게스트’와 ‘인간 게스트’를 신보 <Graduation>에 초대한다. 엘튼 존, 스틸리 댄, 다프트 펑크, 마이클 잭슨, 심지어는 크라우트록(krautrock: 1960∼70년대 독일에서 융성했던 실험적 록음악) 밴드 캔(Can)까지,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별 연관이 없었을 뮤지션들의 음악이 툭툭 튀어나온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 팀벌랜드, DJ 프리미어, T-페인, 모스 데프, 드웰 등의 일급 프로듀서/뮤지션들도 이런저런 모습으로 들어와 팡파르를 분다. 음반 외적으로도 화려하다. 일본의 키치미술가 다카시 무라카미가 인상적인 커버 그림을 제공했고, 송대관과 태진아식 라이벌 관계인 50센트(50Cent)가 같은 날 신보 <Curtis>를 공개하며 시너지 효과도 일으켜줬다.
조건이 이렇게까지 좋으면 일부러 그러려고 해도 못 만들기 어렵다. 그는 여전히 샘플과 비트를 흥미롭게 다루며, <Champion>과 <Good Life> 등은 발군이다. 랩 실력도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최종결과를 놓고 볼 때 <Graduation>은 수석 졸업이라기보다는 우등 졸업에 가깝다. 샘플 게스트의 명단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 사운드의 방향성이 전체적으로 차갑고 간결하고 냉정해졌는데, 몇몇 곡에서는 그런 시도가 지루하게 들린다(특히 <Drunk & Hot Girls>). 더불어 한창 밀고 있는 싱글인 (다프트 펑크를 샘플로 쓴) <Stronger> 역시 예전 히트곡이 주던 강력한 인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음반 자체만 놓고 보자면 수준급이라고 해야겠지만 3부작의 마무리로서는 아무래도 좀 아쉽다. 역시 졸업은 힘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