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 마님>

비정상성의 시한폭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풍 전야의 조마조마함을 털어낼 수 없지만 MBC <아현동 마님>은 현재까지 비교적 많이 튀지 않는 멜로의 도로를 주행 중이다. 띠동갑의 연상연하 커플이 사랑에 빠졌고, 집안의 반대로 눈물로 베갯머리를 적신다는 전개야 남녀의 이름 석자가 한번만 들어도 머리에 콕 박히는 탁월한 작명의 ‘백시향’과 ‘부길라’라는 점을 빼고는 언뜻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멜로가 <아현동 마님>을 논할 때 누락할 수 없는 존재인 임성한 작가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살 연하의 남성과 결혼한 작가의 개인사와 맞물려 진작부터 자전적 스토리가 아니냐는 조명도 받은 이 드라마의 러브스토리는 ‘불가해’해서 늘 안줏거리 같은 담화를 양산해온 임성한 작가에게 일보 전진하는, 그나마 친절한 열쇠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성한 월드’의 인물들은 김수현 작가의 분신들과 한번 대결을 주선하고 싶을 만큼 누구한테도 꿀리지 않을 뛰어난 말발로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곤 한다. 생활상식, 공중도덕 등을 따질 때 특히 그렇다. 게다가 예측을 뛰어넘는 느닷없음과 독기로 응전의 의욕을 해제할 때도 있다는 점에서 대적할 상대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42살 백시향(왕희지)과 30살 부길라(김민성)는 온갖 드라마의 ‘파란만장, 우여곡절’ 커플들과 ‘사랑의 수사(修辭)’로 종목을 한정해 경쟁을 펼친다면 안타깝게도 하위권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안아주세요’를 연발하는 부 검사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나타나도 길라씨만큼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우리 수석님’(백시향은 인천지검 수석검사님이다)은 귀여울 정도로 초보적인 사랑 표현법을 선호한다. 42살의 동안 여성이든, 10대 고딩이든 사랑에 빠지면 유치해지고 절절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듯 ‘우리 수석님’은 부잣집의 요조숙녀가 돼 보랏빛 드레스를 차려입고 ‘왕자님’ 부길라와 외출하는 예쁜 꿈도 꾼다. 드라마는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재현해 보여준 뒤 잠에서 깨 그 꿈과 다른 현실에 눈물을 흘리는 수석님의 애절한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동화풍 콩트와 슬픈 멜로의 감성을 연결짓기도 한다.

순수하고 고운 온실 속의 소녀 백시향과 단순하게 저돌적인 소년 부길라는 ‘꽃을 사주네, 마네’와 같은 테마를 두고도 꼬치꼬치 의견을 교환하며 사랑의 세심함을 집요하게 탐험한다. 띠동갑 커플의 사랑 유효기간을 두고 드라마 속 주변 사람들은 그것도 후하다 싶은 ‘길어야 10년론’을 내뱉고 있는 와중에 부길라는 ‘짧아도 60년론’을 선언하며 콩깍지의 위력과 두께도 증명하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사춘기 시절부터 ‘러브 이즈’(Love is)라는 말 뒤에 들어갈 통찰의 문구 하나 정도는 고민해본 적이 있을 테고, 그 사랑에 관한 많은 열망의 조각들은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다양한 내러티브로 확산돼왔을 것이다. <아현동 마님>의 멜로에는 러브스토리의 발달사에 퇴행하는 유아적인 솔직함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의 무한한 힘과 밑그림에 맹목적인 신뢰를 갖고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임성한 작가의 시선에서 미숙하고 여린 보통 여자의 심장 박동 수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제법 흥미로운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