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이 자리에서 나는 주체의 신분에 따라 말의 힘이 달라지는 양상을 살폈다. 그런데 말의 힘을 만들어내는 데 주체의 신분보다 더 큰 구실을 하는 것이 입의 수(數)다.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말의 (사회적) 힘은 커진다. 따지고 보면 주체의 신분이 말에 베푸는 힘도 궁극적으로는 입의 수로 환원된다. 어느 분야 ‘권위자’의 말은 그를 신뢰하는 대중화저자(파퓰러라이저)나 대중매체의 입을 통해 되풀이되고, 그 말들은 다시 그 대중화저자나 대중매체를 신뢰하는 대중의 입에서 되풀이됨으로써 힘을 얻는다.
말의 힘이 입의 수에 의존하는 이 현상을 고분고분 받아들인 것이 다수결주의다. 서로 다른 사회적 판단들이 맞설 때, 설득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어느 쪽도 양보하려 하지 않을 때, 공동체의 선택은 다수결에 따르는 것이 상례다.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질 근거가 또렷하지 않을 때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 근거가 비교적 또렷할 때도 마지막 결정은 다수결에 따를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의 판단에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고, 가치판단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판단의 영역에서도, 말의 힘은 입의 수에 달려 있기 일쑤다. 그리고 그 힘이 가치판단의 영역을 쉽사리 오염시킨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본격화하고 있었을 때조차, 다수의 한국인들은 황우석씨가 줄기세포 연구에서 뭔가 획기적인 것을 이뤄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만들어낸 것은 대중매체였다. 그리고 황우석씨가 뭔가 이뤄냈다고 떠드는 그 수많은 입들이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을 묻어버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드레퓌스 사건 때,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드레퓌스 대위가 독일의 간첩이라고 믿었다. 이 믿음을 만들어낸 것 역시 당대 프랑스의 주류언론이었다. 그리고 드레퓌스가 간첩이라고 떠드는 그 수많은 입들이 인종주의나 국가주의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을 하찮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시절 소수의 드레퓌스 옹호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이런 수많은 입들에 굳건히 맞섰다. 이 ‘다수결주의자들’에게, 그는 어떤 어리석은 소리를 5천만명이 지껄인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어리석은 소리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실제의 사회적 결정에서 5천만의 입이 내지르는 어리석음은 큰 힘을 지닌다. 그 어리석은 소리가 가치판단의 영역에 속할 때만이 아니라 사실판단의 영역에 속할 때도 그렇다.
신문이라는 제도가 태어난 이래 기자는 문필가 집단 가운덴 공동체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큰 직업인에 속했다.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목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복제텍스트를 통해(그 이후의 방송기자라면 전파[電波]를 통해) 똑같은 말을 수십만 번, 수백만 번 되풀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십만 개의, 수백만 개의 입을 지닌 특권적 커뮤니케이터였다. 신문들이 발행부수에 그리 집착하고 방송사가 시청률에 그리 집착하는 것은 제 입의 수가(제 입 앞에 늘어선 귀의 수가) 제 말의 힘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터넷 주체들이 조회 수에 그리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흔히, 인터넷이 대중에게 발언권을 주었다고들 한다. 이 말은 인터넷을 통해서 이제 대중도 제 입의 수를 늘릴 수 있게 됐다는 뜻일 테다. 그 이전에도 대중 개개인에게 발언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입 하나의 발언권만 있었을 뿐이다. 전통적으로 제 입을 복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직업적 문필가들 아니면 그 문필가들이 떠받드는 권력자들뿐이었지만, 인터넷의 보편화 이후 이젠 누구라도 제 입을 복제할 수 있게 됐다. 흔히 ‘낚시질’이라 부르는 행위는 제 입의 수를 되도록 늘리려는 네티즌들의(물론 올드미디어 종사자라고 그런 짓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간힘과 관련 있다.
이렇게 보편화한 입의 복제는 ‘참여민주주의’의 바탕으로도 여겨진다. 문제는 ‘참여’와 ‘동원’ 사이의 담이 너무 낮다는 데 있다. ‘참여정부’를 만들어내고 보호해온 인터넷은 흔히 동원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나라 반동세력도, 인터넷을 통한 그 대중동원의 기법을 충분히 배웠다. 지금, 전투적 네티즌들은 능동적 참여의 주체인가? 1920~30년대의 파시즘 전사들도, 1960년대의 중국 홍위병들도, 그 때까지 있어본 적 없는 새 역사를 만드는 데 자신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공적(公敵) 누구보다도 더 대중을 경멸했을 빅브라더의 동원령에 꼭두각시로서 복무했을 뿐이다.
인터넷은, 한 세기나 반세기 전보다, 빅브라더(들)의 대중동원을 더 쉽게 만들어준 것 아닐까? 파시즘운동이나 문화혁명이 대중동원에 성공한 이유 하나는 그것이 이성의 규율을 ‘해방’의 열정으로 대치하며, 심지어 ‘대의(大義)’의 옷을 입히며, 개개인으로 하여금 내면의 짐승을 드러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 기회는 인터넷 속에서 한결 더 넓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