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는 <쉬리>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엽기적인 그녀> <실미도> <화산고> <살인의 추억> 등을 일본에 소개한, 대표적인 한국영화 수입사이다. 그러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한국영화를 수입하지 못하고, 지난해 <태풍> 등 대표적인 실패작만을 줄줄이 사들였던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격정적인 한류 열풍이 휩쓸었던 지난 4년간 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의 한국 담당으로 일했던 기타 도시히로 본부장은 그러나 그와 관련하여 그저 덤덤하다. 여전히 한국 영화인의 열정과 그로 인한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믿기에 바쁘게 현해탄을 넘나드는 그를, 2박3일의 한국 출장길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 탓에, <엽기적인 그녀> 이후 돈독한 관계를 유지 중인 신씨네 신철 대표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옆자리에서 오가는 폭탄주를 못 마시는 걸 아쉬워하는 그는 한국에서 “(일본과 달리)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한국인들과 함께 일하는 걸 진심으로 즐기는 듯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누도 잇신, 10년지기 친구인 이와이 순지, 자신이 영화를 제작하는 사카모토 준지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영화감독과 배우와 스스럼없이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한 휴대폰을 보여주는 그는, 영화를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좋은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이다.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며 간간이 짧지만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던 기타 도시히로 본부장의 목표는 일본에서 한국영화를 다시 한번 히트시키는 것,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본영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한국영화로 손해를 본다면 한국영화로 이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아뮤즈의 정신이라는 그의 각오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일본 내 웬만한 스타들을 모조리 거느린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유명한 아뮤즈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회사인가. =우리 회사는 아뮤즈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라고 볼 수 있다. 아뮤즈 엔터테인먼트는 예능 매니지먼트 전문회사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도 있다. 표면적으로 아뮤즈 소프트는 DVD 제조 판매 회사다. 그런데 DVD를 만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구매하고 제작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어 해외영화와 드라마의 제작과 판권 구매까지 하게 된 거다.
-두 회사가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었다는 말인가. =아뮤즈 소프트 이전에 아뮤즈 엔터테인먼트 밑으로 아뮤즈 픽처스라는 영화 배급회사가 있었다. 그리고 아뮤즈 소프트 판매라고, 아뮤즈 픽처스가 권리를 가진 콘텐츠를 DVD로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그러다가 4년 전쯤, 아뮤즈 픽처스가 도시바에 매각되고, 아뮤즈 소프트 판매만 남았다. 그러다보니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확보해야 했고, 그래서 이름을 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로 바꾸고 지금과 같은 일을 하게 됐다. 아뮤즈 소프트의 미야시타 마사유키 회장은 픽처스와 소프트 양쪽 대표였으니, 아뮤즈 픽처스의 경영 노하우와 정신은 아뮤즈 소프트에 계승된 셈이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아뮤즈 소프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사실 객관적인 숫자상으로는 말하기 어렵다. 우선 방송과 드라마에 대해서는 TBS, 후지TV 등의 거대 방송사가 있고, 영화쪽으로는 도호, 쇼치쿠, 도에이 등 전통적인 거대 배급사가 있잖나. 1990년대 중·후반 일본에 한국영화가 거의 소개되지 않을 때, <쉬리>를 일본에 크게 소개했으니까. ‘한국영화는 아뮤즈 소프트’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렇게 수입한 한국영화의 배급은 직접 하나. =우리는 아뮤즈 소프트와 같은 배급회사가 아니니까 도호, 도에이, 도시바 등에 배급을 맡긴다. 작품에 따라서 맞는 회사와 함께하는 식이다. 미야시타 회장은 예전에 이봉우 사장과 손잡고 <쉬리>를 수입했고, 다양한 방송사며 배급사와 관계를 맺는 등 인간적인 걸 잘 챙기는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여러 곳과 사업을 하는 경우가 일본에선 흔치 않은데, 어찌 보면 우리가 좀 느물느물하다고도 볼 수 있고. (웃음)
-2000년대부터 생겨난 한류 열풍과 그것이 최근 1, 2년 사이 갑자기 식어버린 분위기에 대해 듣고 싶다. 어찌 보면 아뮤즈 소프트는 그 중심에 있었던 셈인데. =2005년에 일본 흥행수익 20억엔 이상의 작품 중 한국영화가 세편이나 있었다. 30억엔 가까이 기록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7억5천만엔의 <외출>, 20억엔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까지. 근데 이중에 우리가 수입한 건 하나도 없었다. 외로운 시기였다. (웃음) 2006년에는 한국영화가 더 잘될 거라는 예상으로 많은 회사가 경쟁을 벌였고, 엄청나게 비싼 미니멈 개런티를 감수했다. 근데 막상 개봉을 해보니 대부분 흥행수익상으로 5억엔에 멈춰버리는 적자를 기록한 거다. 일본 회사에서 한국영화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이미지가 확산된 게 그때였다.
-아뮤즈 소프트 수입작 중에서 최대 성공작은 무엇이었나. =<엽기적인 그녀>. DVD만 22만장이 팔렸고, 여기에 극장까지 합치면 최고였다. 최대 실패작이 무엇인지는 노 코멘트다. (웃음) 실패작 중 하나인 <데이지>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정우성과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나오는 영화니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까 싶어서 샀는데, 얼마에 샀는지는 말 못한다. (웃음) 물론 막상 영화를 본 뒤에는 실망한 게 사실이다. 그때는 2년 전에 부산영화제에서 한꺼번에 샀고, 분위기상 완전히 히트를 할 거라고 예상했던 <야수> <태풍> <데이지>가 1달 간격으로 개봉해서 줄줄이 망하는 암울한 분위기였다.
-일본 수출시장이 급락하면서, 한국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높아진 미니멈 개런티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었다. =미니멈 개런티란 구매자가 작품에 대해 지급하는 최소한의 금액일 뿐 해당 작품이 돈을 벌면 계약대로 수익을 배분하고, 이를 통해 제작사와 수입사 모두 돈을 버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니멈 개런티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애초 영화를 보고 괜찮으면 구매를 하는 분위기에서는 좋은 영화만을 수입하는 게 가능했는데, 한류 붐이 일어나면서 스타와 시놉시스만으로 덜컥 영화를 사버리니 좋은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게다가 일본 안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조건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어쨌거나 미니멈 개런티가 이름에 무색하게 급격하게 상승됐고, 본전도 못 건진 일본 회사들이 더이상 한국영화를 사려 하지 않고 있다. 사실 한국쪽에 놀아난 우리도 문제였으니 할 말은 없다. 파는 쪽에서는 1엔이라도 비싸게 사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사준 사람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닐 거다. 영화 한편만 팔고 말 게 아니라면 말이다. 솔직히 일본영화를 한국에 비싸게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한국에서 크게 손해를 본다면 정말 미안할 것 같다. 결국 미니멈 개런티도 이제 현실화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좋은 작품이라면 반드시 팔릴 수밖에 없다.
-한국 콘텐츠와 관련한 최근의 상황은 어떤 식인가. =우리의 주력은 DVD시장이고, 여기엔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도 있다. 일본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팬은 20만∼30만명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고, 현재는 가능한 한 빨리 재밌는 한국 드라마의 판권을 수입해서 거기에 맞는 일본 방송사에서 방영한 뒤, DVD로 수입을 올리려고 한다. 예전에 일본 DVD시장의 80%가 영화였다면 지금은 그에 비해 훨씬 줄어든 게 사실이니까 한국 콘텐츠만의 변화는 아니다. 드라마,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 DVD로 인기를 끄는데, 유명 개그맨의 쇼는 10만 세트 규모로 팔릴 정도다. <24> <프리즌 브레이크> 등의 미국 드라마 DVD도 많이 팔리고 있고. 영화라고 하면 20만∼30만명의 한국 팬들이 다 보더라도 4억∼5억엔 정도의 흥행수익밖에 안 나는데, 드라마 DVD는 20만∼30만명의 10분의 1만 세트를 사줘도 우리에겐 상당한 흑자가 된다.
-최근 수입한 한국 드라마는 어떤 것들이 있나. =<커피프린스 1호점>을 수입해서 일본에서 꼭 히트를 시켜보려고 준비 중이다. 그간 <내 이름은 김삼순> <여우야 뭐하니> <어느 멋진 날> 등을 수입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드라마를 보고 샀고, <여우야 뭐하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작가가 썼다기에 샀고, <커피프린스 1호점>은 캐스팅과 시놉시스에 끌렸다.
-한국영화에 대한 아뮤즈 소프트의 전망은 어떤가. =이제는 한국영화라고 무조건 사고 보는 현상은 없다. 정상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원래 극장 수를 적게 잡아서 점유율을 올리는 게 정석이다. 흥행수익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신중하게 극장을 골라서 천천히 개봉관을 늘려가면 관객이나 업계에서 그 영화를 성공했다고 인정해준다. <데이지> 같은 영화는 예전에 200개관에서 개봉해서 5억엔밖에 못 벌었는데, <엽기적인 그녀>는 50개관에서 개봉해서 5억엔을 벌었다. 그런 게 대히트다. 현재 아뮤즈 소프트의 방침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국영화를 정성스럽고 신중하게 알려가려고 한다. 지난 7월14일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런 경우다. 10개관에서 개봉했고, 도쿄 등 대도시 중심으로 옮겨다니면서 전국 50개관 정도에서 상영했는데,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DVD 수익과 합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다. 좋은 영화를 내용으로 승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강동원 등 주연배우가 아닌 감독을 초청했다. 물론 강동원 같은 대스타가 온다면, 그에 관한 기사는 차고 넘치겠지. 근데 아무도 영화 기사는 안 쓸 거다. 한류 스타라는 계급장이 좋은 영화에 오히려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언론이나 관객이 영화 그 자체로 봐주길 원했다.
-일본의 부가판권 시장이 크다는 건 알았지만 상상 이상인 것 같다. =한국은 극장수익이 거의 전부라고 들었다. 한국의 DVD 총매출과 아뮤즈 소프트의 DVD 1년 매출이 거의 같다고 알고 있다. 일본에서 영화의 흥행수익은 연간 2천억엔 정도인데, 영화 DVD 매출이 2500억엔 정도. 그래서 일본에서는 영화를 개봉할 때부터 DVD 출시를 염두에 둔다. 어떤 극장 만원사례라는 팩트가 DVD시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중요한 건, 히트감을 어떻게 내느냐다.
-아뮤즈 소프트 안에서 당신의 주된 임무는 무엇인가. =판권 구입과 제작 마케팅을 총괄하는 본부장인데, 주특기는 한국이다. 한국에 처음 온 게 4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한국영화는 물론 한국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근데 첫날부터 한국이 좋았다. 일단 도쿄와 오키나와보다 서울과 도쿄가 더 가깝다. 거리만큼 문화도 가깝고. 결정적으로 그해 부산영화제 때 다시 한국에 와서 한·중·일 프로듀서들과 파티를 했는데, 의기투합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일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몇배는 더 재밌었다. 이와이 순지가 늘 부산영화제에 꼭 가봐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게 왜였는지를 알게 됐다. (웃음)
-아뮤즈 소프트 이전의 경력이 궁금하다. =대학 때 영화 동아리에 있었고, 영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복사기 회사에 들어갔다. (웃음) 거기서 8, 9년 정도 일했는데 1991년에 세계육상대회가 열렸고, 우리 회사가 그 대회에 중요한 스폰서가 되는 바람에 내가 그곳을 담당했다. 육상대회 사무국에서 방송사 사람들을 알게 됐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복사기 회사 영업사원으로, 5시부터 자정까지는 TV 일을 했다. 근데 이상하게 피곤하지도 않고, 이게 적성인가 싶어서 와우TV에서 영화 판권구매 겸 영화 프로그램 PD를 했다. 그러다가 아뮤즈 소프트에 들어왔는데,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이 많다. 미야시타 회장님도 30살까지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가 30대에 음반사업부터 시작해서 42살에 영상사업을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나랑 통하는 게 많다. 여기 오기 전에 한국의 영화잡지 <씨네21>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하니까 “생각 잘하고 얘기하라. 넌 너무 감정적인 게 문제야”라고 하시더라. (웃음)
-한국과 관련한 기억 중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지난해 내가 제작한 이와이 순지 감독의 영화 <무지개 여신>이 오픈시네마에 초청됐는데, 3천명이 넘는 관객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내가 제작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게 너무 감격적이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건 부산영화제 ID카드의 게스트 넘버가 이와이 순지 감독의 경우 한자리 숫자였다는 거. 매년 그 번호로 ID카드를 발급받는다기에 신기해서 사무국에 물어봤더니, 그게 이와이 감독의 고유번호라는 거다. 뭐랄까, 크리에이터를 최대한 존경하는 마음, 크리에이터가 있어야 영화가 있다는 마음이 느껴지더라.
-사업 파트너로서 한국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내가 그런 걸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뭐, 가장 중요한 건 신뢰관계 아닐까. 그것만 있다면 언제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과 한국이 서로 돈을 벌겠다고 나서는 게 아니라 넓고 길게 보는 게 중요하다. 각 나라가 감동할 작품을 만들어갑시다, 라는 식이랄까. 사실 추측한 대로 되는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게 영화사업의 재미인 것도 있다. 그런데 이런 캐스팅을 하면, 이런 신을 넣으면 되겠지, 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정말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어서 순수하게 만들어야지, 그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생각하면 처음 한두번은 성공할 수 있겠지만 실패할 확률이 오히려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