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9월11일(화) 오후2시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연인(공효진)과 헤어지고, 그간의 방탕한 생활의 댓가로 얻은 간경변이 악화된 영수(황정민)는 지친 심신을 버려두는 심정으로 '희망의 집'이라는 요양원에 들어선다. 폐질환을 앓으며 9년간 그곳에 머물러 온 은희(임수정)는 아낌없는 사랑으로 영수에게 다가서고,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두 사람은 둘만의 행복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라는 상투적인 반전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들어맞는 경우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1년이 지나 영수의 병은 은희의 정성으로 완쾌되고, 영수를 그곳에 머물게했던 마법도 다한다. 은희는 버려지고, 영수는 그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10년만에 완성된 허진호 감독의 네번째 장편.
말말말 "태풍이 다행히도 잘 지나가서, 좋은 날에 <행복>을 보여드립니다. 감기조심하세요. (목쉰 소리)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황정민 "<행복>, 그냥 편한 마음으로 편하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감성을 지닌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임수정
100자평 <행복>은 허진호 감독의 ‘사랑 연작’의 네번째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사랑이 죽음으로 승화된 보석같은 것이었고, <봄날은 간다>의 사랑이 변색해 떨어지는 낙엽이었으며, <외출>의 사랑이 상처를 어루만져주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는 ‘빨간약’이었다면, <행복>의 사랑은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같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 남자에게 헌신하는 여성과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행복>은 통속적인 ‘호스티스 영화’에 속할 수도 있겠지만, 허진호 감독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사들과 꼼꼼한 디테일 묘사로 남녀 내면에서 일렁이는 밀물과 썰물을 보여준다. 특히 후회하게 될 줄 알면서도 버젓이 잘못을 저지르고, 얼마 가지도 않아 자신의 행동에 몸서리치곤 하는 게 사람, 혹은 사랑이라면 <행복>은 영수를 통해 이같은 현실을 잔인하게 드러낸다. 성녀(聖女)로 느껴질 정도로 영수에게 헌신적인 은희의 캐릭터는 다소 비현실적일 수 있고, 선명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는 다소 작위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남녀의 감정이 그리는 변화무쌍한 곡선만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문석 <씨네21> 기자
<행복>은 결국 행복에 다다르지 못한 두 남녀(황정민과 임수정, 혹은 공효진까지 셋)의 이야기다. 모두가 상처를 가졌고, 얼마 뒤 누군가의 상처가 나았지만, 결국에는 둘 다 더 큰 상처를 안고 부서져 간다. 황정민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속에서 가장 ‘나쁜 남자’로 기억될 것 같다.(<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연기한 나쁜 여자보다 더하다) 반대로 마치 나루세 미키오나 미조구치 겐지의 일본 고전영화에서나 볼 법한 희생적 고뇌의 여성을 연기하는 임수정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속에서 가장 ‘착한 여자’다. <행복>은 스타 캐스팅과 더불어 언제나 캐릭터가 선명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속에서 가장 나쁜 남자와 착한 여자, 그렇게 극점에 서 있는 두 인물이 만난 영화이기에 흥미롭다. 허진호 감독의 변함없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반가움일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아쉬움일 것이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사랑은 계급의 문제다. 여기서 계급이란 물론 경제적 부를 의미하겠지만, 멜로드라마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가의 문제 역시 결국은 계급이라는 비인간적인 속성에 비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순간에 있다. 한국형 멜로영화의 거장 허진호 감독은 네번째 영화에 이르러 비로소 진짜 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더 큰 상처를 받을 것이며, 더이상 버릴 게 없어 진짜 사랑을 했던 그녀는 끝내 비열한 남자를 용서할 것이다. <행복> 속 인물들은 전형적이지만 누구라도 그러한 조건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수긍할 만하다. 그들은 또한 한없이 악하거나 한없이 선하지만 '변명하지 안음'의 정도는 공평하게 부여되기에 특별한 거부감은 생기지 않는다.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통속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것 역시 눈에 띈다. 어쨌거나 감독 자신에게는, 다시 여기서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주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 오정연 <씨네21> 기자
멜로전문 감독, 허진호의 네번째 영화 <행복>은 세가지 요소를 전작으로 부터 빌어온다. 첫째, 죽음이 내정되어 있다는 점(<8월의 크리스마스>), 둘째, 동병상련의 상황으로 출발하지만 둘의 상황이 갈라진다는 점(<외출>), 셋째, 사랑이 변한다는 점(<봄날은 간다>)이다. 그러나 전작들의 절제와 감각은 찾기 어려우며, 정조는 한없이 신파가 되었다. 일찌기 심영섭(<씨네 21> 525호)은 신파멜로와 감성멜로의 구분점을 사랑이 변한다고 믿는가 아닌가로 나누었지만, <행복>은 사랑이 변한다고 믿는 신파이다. (공교롭게도 황정민에 의해 연상되는) <너는 내 운명>을 가혹하게 뒤집으며 도달한 이 영화의 지점은 불행한 여인네가 사랑을 믿었다가 지독하게 배신당하는 60년대 최루영화, 또는 어리석은 인간의 회개 실패담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교만함을 그린 종교(간증)영화이다. 서사의 기시감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영화의 악덕은 또 있다. 바로 캐릭터의 구축에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남녀 주인공은 사랑에 있어 전형적인 성역할을 할 뿐, 일상에 있어 어떤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젊은 나이에 클럽 사장이라는 황정민은 어떤 배경을 지! 닌 인물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은 요양원 원장이다.) 통속 소설같고 트롯트 가사 같은 이야기에 감독 최고의 재능이라 할 만한 섬세한 감수성이 가미되지 않은 영화. 찬바람 부는 시즌과 은근히 많은 임수정 팬들에게 먹힐만하긴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긴 힘들 것 같다. 황진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