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인’ 지점으로 달려가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현재 애정전선의 향배를 두고 시청자들한테 바짝 채찍질을 당하고 있다. 캐스팅만으로 어림짐작해도 12부 현재 진도상 ‘친구 사이’인 윤희(배두나)와 수찬(김승우)이 사랑의 엔딩을 장식할 전망임은 주지의 사실. 그런데 그 같은 유력한 ‘안’에 ‘안 돼, 안 돼’라고 도리질을 치며 윤희(배두나)-준석(박시후) 커플로 방향키를 돌리려는 움직임이 세게 일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나열한, 이보다 더 절절할 수 없는 호소문도 인터넷게시판에 등장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 드라마의 정지우 작가가 전작인 <내사랑 못난이>에서 보여준 막판 배반(?)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정 작가는 ‘못난이’ 차연(김지영)과 ‘재벌 2세’ 동주(박상민)의 사랑으로 한창 시청자들의 가슴을 흔들다가 결국 차연을 ‘친구’인 호태(김유석)와 맺어주는 결말로 냉수를 끼얹어 ‘버럭’ 소리를 자아낸 바 있다. 그가 지난 8월22일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애교있게 전과를 사죄하고 이번에는 시청자의 의견에 귀를 쫑긋 세우겠노라고 공식 선언했음에도 시청자들은 두번은 속지 않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연수연 살해사건’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구조를 가미한 이 드라마는 건설사 사택이 모여 있는 ‘행복마을’의 완벽하지 않은 이웃 군상을 펼쳐내며 삼각관계 중심의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차별성을 띤 채 출발했다. 그런데 가장 뜨거운 화력은 역시 로맨스에서 솟구쳤다. 특히 자칭 타칭 주책바가지인 평범녀 윤희를 택하면 자살하겠다는 어머니를 둔 ‘재벌가의 팀장님’ 준석의 안타까운 눈빛에서 말이다. 드라마의 숱한 ‘초고속 승진형 실장님’에 비해 준석은 말이 몹시 짧은데다 해외로 도망가 딴살림을 차리겠다는 객기도 없는 인물. ‘그런데요’, ‘대체 이게 뭡니까’ 등 몇몇 까칠한 대사만 내뱉던 그가 말문이 트여 윤희한테 반지 대신 팔찌를 끼워주며 내뱉은 긴 프러포즈는 전례없이 애절한 부조리함마저 머금었다. 결혼은 집안에서 정해준 여자와 한다고 단언한 뒤 그래도 당신과 따로 가는 인생은 싫다는,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날 좀 가엾게 생각해달라는, 북치고 장구치는 기묘한 사랑고백을 들려준 것이다. 수찬의 칼 같은 지적대로 사탕발림의 ‘세컨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결혼없이 영원히 사랑하자는, 재벌 2세와 신데렐라의 기묘한 사랑 해법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해서 정신 못 차리는 윤희를 나무라고, 준석한테 대신 주먹을 뻥 날려주며, 반말, 스킨십 등으로 윤희와 허물없이 소통하는 수찬한테 힘을 실어주고 싶다. 또 사랑은 공기와 같은 것이며 가장 소중한 존재는 등잔 밑에 숨어 있는 법이라며 윤희의 눈에 낀 콩깍지도 벗겨주고 싶다. 그런데 머리의 움직임과 달리 이 심장 옆 가슴은 조용히 울고 짜는 윤희와 준석의 찌질함에 기운다. ‘그냥 내 편이 돼주면 안 되느냐’고 울부짖는 윤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준석과 전화 통화하면서 헛헛한 유머 시리즈를 주고받지만 왜 그런지 자꾸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는 윤희의 모습에 저릿한 공감을 맛본다.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사랑에 관한 시청자의 욕망은 여전히 짐작 이상으로, 가시밭길을 걷는 아픔이 따르더라도 짧고 굵게 황홀할 수만 있다면 평화와 안정을 기꺼이 반납할 수 있는 달콤한 고통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음을 새삼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