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위니 토드> 9월15일~10월14일/ LG아트센터/ 02-501-7888
“이발사 탈을 쓴 악마!” 스위니 토드는 복수의 칼을 가는 남자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 뮤지컬은 적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숨기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날카로운 칼이나 흥건한 핏자국을, 장난스럽게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듯 슬쩍 보여주면서 낄낄대는 모양새다. 잔인하고 섬뜩하지만 또 그만큼 유머스럽기도 한 기묘한 작품이다.
빅토리아 여왕 치세하의 런던. “눈부신 미소의 정숙한 여자”는 강간당하고, “순진한 사내”는 패배하는 “더러운” 시대다. 한때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한 삶을 꾸리던 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그녀를 탐하던 터핀 판사의 모략에 빠져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감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아랫집에 살던 파이집 주인 러빗 부인은 터핀 판사에게 희롱당한 아내가 자살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전한다. 설상가상으로 터핀 판사는 당시 갓난아기였던 조안나를 양녀로 불러들여 자신의 감시하에 둔 상태. 스위니 토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바커는 유일하게 자신의 알아보는 러빗 부인의 도움으로 파이집 위층에 이발소를 차리고, 복수할 순간만을 기다린다.
쓰디쓴 복수담에 곁들인 것은 스위니 토드의 목숨을 구해준 선원 안소니와 조안나의 달짝지근한 애정담이다. 세상의 불합리함을 견디다 못해 살인으로 되갚으려는 스위니 토드와 달리 안소니는 동정심이라는 미덕을 간직한 인간적인 캐릭터다. 첫눈에 안소니의 심장을 움겨쥔 조안나 역시 터핀 판사의 과보호에도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곱디고운 심성을 지닌 이들 커플은 가혹한 운명 앞에 유독 불운하다. 터핀 판사의 울타리 안에서 조안나를 탈출시키려던 안소니는 갓 피어난 사랑에 들떠 다급히 이발소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판사를 없애려는 스위니 토드의 계략을 방해한 꼴이 된다. 게다가 양녀의 아름다움에 뒤늦게 눈뜬 터핀 판사는 이미 조안나를 아내로 맞이하려는 흑심을 단단히 품은 상태.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이발사 하나를 예정에 없이 죽이고 터핀 판사마저 놓치면서 스위니 토드의 복수극은 광기에 휩싸인다.
<스위니 토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의 조합이다. 이상할 만큼 생기발랄한데다 수완 좋은 러빗 부인은 무겁게 가라앉은 스위니 토드와 흥미로운 콤비를 이룬다. 스위니 토드가 죽인 시체로 러빗 부인이 고기 파이를 만든다는 살벌하나 재기 넘치는 설정도 두 캐릭터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계급과 권력에 기대 아랫사람을 적으로 돌린 터핀 판사와 대조적으로, 이들은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제법 공고한 공범 의식으로 한몸처럼 무장했다. 러빗 부인에겐 사랑이나 스위니 토드에겐 복수의 실마리인 이들의 관계는 언뜻 상류층에 대항하는 민중의 움직임으로도 읽힌다.
19세기부터 전해온 ‘스위니 토드’ 전설을 차용한 크리스토퍼 본드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널리 얼굴을 알린 박해미를 비롯해 류정한, 임태경 등 근래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됐다. 할리우드에선 같은 원작을 토대로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출연하고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하는 동명 영화를 작업 중이니 영화판 <스위니 토드>도 곧 볼 수 있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