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가 났다. 무사고 8년에 7년은 장롱면허였던 나는 오빠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았는데도 심장이 덜컹했다. 맥주 몇캔 집으러 들른 슈퍼마켓의 주차장에 마침 차가 많았는데, 전진후진을 반복하다가 후방의 검은색 차량을 보지 못하고 운전석쪽 앞바퀴 위를 긁고 만 것이다(아주 살짝!).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참치회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취향이 고루 비슷한 말동무와의 드라이브가 기뻤는지, 사실 사고를 당한 운전자가 “아, 빵빵거렸는데 왜 자꾸 뒤로 와요. 보지도 않고!”라고 고함을 지를 때,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난 못 들었는데…’와 ‘아저씨 차가 까매서 안 보인 거예요’라는 씨알도 안 먹힐 대답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물론 참치회 생각과 아이포드에서 나오던 음악에 잠깐 눈과 귀가 멀었다고도 못했다.
사고가 났으니, 일단 내렸다. 내리고 보니 운전자가 화낼 만한 것이, 뽑은 지 한달도 안 된 일명 ‘새삥’이었던 것이다. 분노의 정도로 보건대 지금부터 조용히 죄송하다고만, 칠하든지 통째로 갈든지 맘대로 하시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마침 머리를 거의 중학생 수준으로 자른데다가 레깅스에 짧은 플레어 스커트, 스니커즈 차림이었던 내가 순간 원망스러웠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쓰러질 만큼 미녀가 아닌 내가 원망스러웠다. <미녀는 괴로워>를 보면, 성형수술 뒤 아름다워진 한나, 즉 제니는 사고를 내고도 미모 덕분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넘어가질 않았던가. 물론 영화니까 과장하고 생략한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미녀였으면, 아니 내 입성이 조금 어른스러웠다면 이 상황이 덜 괴롭지 않았을까, 하며 옷이 날개이지 못한 탓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 가족보험인 까닭에 사고가 나자마자 엄마, 아빠에게로 돌아가며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본 차주가 “그거 부모님이랑 얘기해서 돼요? 나랑 해야지?” 하면서 비아냥거렸을 때는 아찔했다. 쪽팔린다. 나잇값을 못하고 있는 삶이란, 어느 순간에고 티가 나게 마련인가보다.
사고를 내고 집에 돌아가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잔소리를 했다. 한귀로 듣고 나머지 한귀로 흘려 보내면서 목도 타고 속도 타서 문제의 맥주를 마셨고, 오빠는 아무 말 안 하고 맥주만 들이켰다. 유난히 목넘김이 따끔했다. 그리고 사고에 대해서는 누구도 화제로 삼지 않았다.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분위기가 어색하리만치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위해주느라고 바쁜 저녁이었다. ‘가족식탁’이라는 제목의 달력그림 정도 되는 풍경을 한 시간쯤 만들다가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뒹굴거리며 TV를 보다가 오빠에게 “근데 차종이 뭐였어?”라고 물으니 마티즈라고 한다. “아니야∼ 마티즈 아니었어. 그거보다는 컸어”, “그럼 뭔데?”를 반복하다가 “아이서티? 그거 같은데…”, “그런가? 달라~ 달라~”를 부르며 또 딴 길로 샜다. 그렇게 사고에 대한 걱정을 시작하다가도 딴 길로 계속 새면서 주말을 보냈다. 그런데 아직 차주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리비로 생각이 모인다. 걱정된다.
PS. 오늘 오전 차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몰라서 “차차차”로 저장해놓은 발신자 표시가 떴다. 15만원이나 나왔다. 아직도 차종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