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9월을 앞두고 새로이 온에어되는 CF도 별로 없어 소재의 빈곤함에 허덕이다 뭔가 ‘거리’를 찾으러 최근 CF들을 둘러보던 중 큰 웃음을 한번 터뜨리고 말았는데 ‘가마솥 밥 요구르트’ CF 때문이었다. 불륜 드라마나 영화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가져온 연출,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는 ‘밥’이라는 말을 통한 반전. 이거 오랜만에 유쾌했다. 게다가 천연덕스러운 밥알 캐릭터와 요구르트 캐릭터의 풀어헤친 부적절한 만남을 통해 제품의 컨셉까지 아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심의도 교묘히 피해가고, 똑똑하다!). 이런 백인 모델의 영어를 이용한 말장난은 현대 캐피탈의 광고로부터 출발해서 점점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근데 그러고 보니 최근 사이 유독 백인 모델이 등장하는 CF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피어스 브로스넌이나 기네스 팰트로, 패리스 힐튼 같은 유명인이 아니라 무명이지만 백인인 모델 말이다. SKY나 모토로라 같은 휴대폰 CF들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하나카드·현대카드는 아예 모든 CF의 등장인물이 백인이다(아니면 차라리 인형이 나오거나). 외제차는 그렇다 치고 체어맨이나 쏘나타 같은 중형차 광고들도 그새 백인 모델로 바뀌었군. 오호라.
분명 유명 연예인의 유명세에 기대는 CF보다는 모델의 후광효과없이 자체의 아이디어와 컨셉으로 승부하는 CF들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 자리를 ‘백인’ 모델들이 채워가고 있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CF를 만드는 사람들이고 광고주고 백인 모델이 나와야 때깔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다. CF계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속된 말이 ‘된장은 간지가 안 난다’라는 것. 몇 억원을 호가하는 값비싼 유명 모델을 쓸 수 없다면 해외 촬영을 가더라도 ‘미제 냄새’가 나는 백인 모델을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제품의 격도 ‘글로벌’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 꽤 오래전부터 온에어되고 있는 A항공 광고가 아닐까 한다. ‘당신의 금요일이 달라지고 뉴욕의 패션도 어김없이 달라졌다’는 그 광고. 몇번을 반복해서 보고도 저기서 왜 뉴욕이 나오고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남는 것은 뉴욕의 거리를 뛰는 금발머리의 여자와 갈색머리의 남자뿐. 뉴욕의 이미지, 미국의 이미지, 백인사회의 이미지 이외에 남는 것이 없는 이 CF는 그 이미지만으로 기능한다. 별 내용없이 뉴욕과 패션과 금발머리로 뭔가 세련된 듯한 이미지를 덧칠하는 것은 A항공뿐만이 아니고 최근 CF의 한 경향이다. 굳이 백인 모델이 나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백인 모델을 비춤으로써 더 좋은 이미지를 얻으려 한다.
이건 아마도 고급스럽다고 생각되는 백인 모델의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잘 먹힌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인 모델이 나오면 어쩐지 더 좋은 제품 같고, 이른바 ‘있어 보인다’는 그런 선입견 말이다. 이런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원류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부터 상대적인 자기 비하까지 그 역사는 뿌리깊다. 그 D영화를 둘러싼 애국주의 논쟁 속에도 이런 편견에서 파생된 반대급부 효과가 한몫 하고 있을 게다.
한동안 이런 백인 모델들의 약진은 계속될 것이다.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뿌리깊은 선입견이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CF란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파고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백인 모델은 당분간 가장 효율적인 비용으로 CF의 효과를 높이는 수단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래도 씁쓸하긴 하다. 어떤 기분이냐 하면 처음 MTV를 봤을 때, ‘미쿡’에서 방금 날아온 듯한 VJ들이 ‘뉴요오오ㄹ크’니 ‘마다아아나’니 하며 서양물 먹고 자랐음을 한껏 자랑하며 뽐내는 것을 보았을 때 혀끝에 감돌았던 그런 미묘한 씁쓸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