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밖으로 조금만 고개를 내밀면 데이브 매킨과 닐 게이먼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만화, 소설, 디자인, 광고, 게임과 기타 뉴미디어 분야에서 때론 같이 때론 따로 작업하던 두 사람의 합작품 <미러 마스크>는 팬들이 몇년 동안 목을 빼고 기다린 영화다. 성인용과 어린이용으로 구분되는 매킨과 게이먼의 작품들 중 <미러 마스크>는 후자에 해당한다. 스텔라는 부모가 운영하는 서커스단에서의 생활이 지루해진 십대 소녀인데, 어느 날 엄마가 병으로 쓰러지자 서커스단의 운영도 위기에 처한다. 슬픔에 잠든 소녀는 방에 그려놓은 낙서와 비슷한 모양의 기묘한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자기와 닮은 어둠의 왕국의 공주 때문에 그쪽 세계가 붕괴될 거란 얘기를 듣고 마법을 찾아 떠난다. 매킨과 게이먼의 걸작만화 <샌드맨>류의 영화를 기대한 사람에겐 심심할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화를 킬킬거리며 보았을 어린이들은 뭐 어떠냐고 반문할 성싶다. 사실 <미러 마스크>의 내용은 <벽 속에 늑대가 있어>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그리고 무엇보다 <코랄린>을 짜깁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현실의 공간 바로 옆에 위치한 판타지의 세계, 일상을 변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로드무비, 공간을 넘나드는 장치인 거울과 벽, 양면성을 상징하는 마스크, 가족과 닮은 얼굴의 다른 가족의 존재, 힘들고 지친 부모와 쾌활한 아이의 대비, 현실로의 안전한 귀환과 가족의 복원, 기이한 모양의 생명체들, 엉뚱한 발상과 환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의 조합’ 같은 특징들이 <미러 마스크>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위험한 상황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소녀가 주인공인,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 <미러 마스크>의 판타지는 그런 것이다. 그 판타지가 설령 유치하다 해도 <미러 마스크>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매킨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총집결해놓은 비주얼이다. 매킨은 기본적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인상적인 콜라주로 표현하는 데 능한 사람이다. 펜과 붓 그리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채색된 <미러 마스크>의 이미지들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며, 심히 넘쳐나는 이미지의 향연으로 인해 화랑을 걸으며 일러스트레이션을 본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영화를 처음 본 배급사의 임원들은 ‘LSD 환각 상태에서 만든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의 어린이 버전’이라고 평했단다). 좀더 알찬 이야기 구조를 갖춘 그들의 다음 영화가 벌써 기다려진다. 그들의 원작과 각본이 영화용으로 줄줄이 대기 중인 상황에서 별도 영화 작업이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미러 마스크>는 소규모 집단이 수많은 특수효과를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소화한 작품이다. <미러 마스크>의 DVD는 그 독특한 결과물을 예쁘게 담아놓았다. 매킨과 게이먼의 음성해설이 지원되지만,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제대로 맛볼 수 없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8부로 나뉜 ‘메이킹 필름’(52분)이 썩 훌륭해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매킨과 게이먼이 초기작, 주제, 영화를 만든 계기, CG와 영화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작진과 스탭, 배우들도 인터뷰에 동참했다. <라비린스> <다크 크리스탈> 등을 연출, 제작한 짐 헨슨을 기억한다면, 그의 딸 리사 헨슨이 제작자 중 한명이란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게다(짐 헨슨 프로덕션쪽은 <미러 마스크>를 짐 헨슨의 체취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소개한다). ‘제작 16일째의 기록’과 ‘원숭이새 장면 메이킹’, ‘궤도 거인 개발과정’에서 현장, 실사 촬영, CG 작업에 관해 일견한 뒤엔 ‘14개의 질의응답’을 꼭 보길 바란다.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유머와 장난기 등 감춰진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보지 않으면 후회할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