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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한 낭만, <커피와 담배>

EBS 9월2일 오후 2시20분

간혹 ‘술과 담배 중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처럼 ‘커피와 담배 중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끊을 용기는 없으니 그나마 ‘덜’ 해로운 것을 선택해보겠다며 머리를 굴리는 건데, ‘둘 다 끊지 않으면 그게 그거야’라고 가상한 결단에 찬물을 퍼붓고 싶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부드러운 웰빙의 미소에 매혹당해버린 지 오래다. ‘커피 한잔의 여유’ 따위의 문구를 내걸고 흡연을 금지하는 커피집들이 늘어가는 작금의 상황은 건강에 유해한 취향의 소유자들에게는 불길하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는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기꺼이 건강을 바치는 이들의 영원한 로망이자 이들에게 위안이 될 만한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담배 연기와 커피 향기 외에도 짐 자무시의 괴팍한 친구들의 엉뚱한 독설이 가득한 보물 상자다.

1986년부터 틈틈이 ‘커피와 담배’를 주제로 단편을 만들어오던 짐 자무시는 2003년 마침내 1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 한편을 내놓았다. 에피소드마다 출연배우, 촬영 시기, 참여 스탭이 다르며, ‘커피와 담배’에 얽힌 11가지 이야기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연결고리도 없다. 카메라는 커피와 재떨이가 놓인 테이블, 그리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을 찍고 그들의 대화를 들을 뿐이다. 지극히 단순한 구도지만, 영화는 커피와 담배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성경 같은 글귀와 장면을 선사해준다. 이를테면 이기 팝과 톰 웨이츠가 담배에 전 걸걸한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 “담배를 끊는 것의 미덕이 뭔지 아는가? 끊었으니 한대 정도는 파워도 된다는 거지.” 이 말을 뱉고서 담배 한 모금을 깊숙이 들이마신 둘의 표정은 가히 천국을 경험한 자들의 것이다. 혹은 커피와 담배가 유해하다는 자들의 경고에 맞서 커피를 주전자째 마시는 빌 머레이의 무심한 표정. 혹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긴 낮잠에 빠져드는 노인의 평화로운 모습은 건강에 유해한 취향의 소유자들이 꿈꾸는 삶의 가장 낭만적인 마지막 순간일 것이다. 커피와 담배가 있는 그 아침, 혹은 그 오후, 우리 사이에는 소통과 유머가 있고 미묘한 질투와 눈치가 있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충만한 정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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