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번복하고 코트에 복귀한 NBA 스타 마이클 조던이 요즘 미국 프로 스포츠계의 최대 화제라고 한다. 마이클 조던은 올해 우리 나이로 40살. 그의 전성기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시카고 불스에서 챔피언전 3연패를 이루며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던 때였다. 육체적 기량만 따진다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그보다 더 나은 선수들이 왜 없겠는가 싶지만 팬들은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을 다시 되새겨줄 우상이 그리웠는가보다. 외신에 따르면 조던이 뛰는 시범 경기는 연일 만원사례를 이룬다고 한다.
SBS 수목드라마 <신화>가 있다. 이 드라마의 시대 배경은 70년대 말부터 90년대이다. 유신정권의 몰락에서 장영자, 한보그룹사건 등 현대사의 큰 사건들이 등장하고, 청계천을 배경으로 벤처기업가, 국제적인 로비스트 등 한국경제의 명암을 나타내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시대배경과 등장인물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꿈과 야망을 쫓아가며 나름대로 성공의 신화를 쌓아가는 ‘386세대’들의 이야기이다.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격변기에 청년기를 보내고 이제는 사회의 핵심적인 중추로 자리잡은 386세대들은 사실 드라마 소재로 무척 매력적인 계층이다. 우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구한말처럼 실감 잘 안 나는 먼 옛날이야기도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극적 현실감이 넘친다. 그렇다고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다룰 때 느끼는 객관성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386세대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기억 속에서 적당히 윤색되고 때로는 미화돼 낭만적 정서로 포장돼 있다.
<신화>는 바로 그런 정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냉정히 말하면 사채업자의 앞잡이에 불과한 태하(박정철)의 행동은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성공하려는 젊은이의 야망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직까지 뇌물제공과 로비활동의 구분조차 애매한 현실에서 갑자기 80년대 여자 거물 로비스트의 이야기가 자랑스럽게 양지로 부상한다. 결과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당시 그들의 선택과 결정은 나름의 고뇌와 아픔이 있다는 식이다.
<신화>를 끌고 가는 회고정서에는 이러한 시대정서 외에 또 다른 것이 있다. 김종학 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은 <신화>는 제작자의 이력 때문에 처음부터 <모래시계>와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일단 시대배경이 같고 <신화>의 박정철, 김태우, 김지수의 갈등구조가 비슷하다. 아예 김영애와 정성모 같은 연기자는 극중 캐릭터나 역할이 두 드라마 모두 거의 똑같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구도 이전에 드라마의 정서적 흐름을 좌우하는 음악이나 화면의 전개부터 너무나 흡사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화>의 음악을 맡은 최경식이나 편집의 조인형은 <모래시계>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던 ‘김종학 사단’의 핵심 멤버이다. 우연히 그리됐는지 아니면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신화>에는 <모래시계>의 그림자가 곳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과연 <신화>가 그런 <모래시계>의 후광에 힘입어 당시의 흥분과 감동을 재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자신있는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모래시계>가 방송됐던 95년에서 불과 7년밖에 안 지났지만 이미 ‘386세대’의 낭만적인 전설과 신화는 깨어진 지 오래이다. ‘386세대’의 선두주자를 자처해온 이들이 정치권에 진입해 어지러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고, 당시 기성세대와 정권을 질타할 때 가졌던 도덕적 정의감도 변질돼버렸다. 사실 이제는 그들의 행보를 좀더 냉정하게 깊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신화>에서는 달짝지근한 회고정서만 보일 뿐 그러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전성기 때 묘기 같은 슬램덩크를 억지로 하기보다 불혹의 나이에 어울리는 농익은 플레이를 펼칠 때 조던의 복귀는 가치가 있다. 이는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01년에 20여년 전 이야기를 다시 하려면 연륜에 걸맞은 통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를 아니한만 못하다(이런 말을 하는 필자도 84학번인 386세대이다). 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port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