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질 그만해라.” 한 선배는 만날 때마다 충고한다. 정부부처에서 기자를 상대하는 이다. “신문기자라는 직업은 말이야, 더이상 매력이 없어.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적당한 때에 얼른 집어치우란다. 술이 더 들어가면, 홍보 파트의 별정직 공무원 자리를 알아봐주겠다며 큰소리를 친다. 나이 들면 ‘안정’이 최고란다. 맞는 말이다. 내가 부양하는 4인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렇다. 위태로운 외줄 위의 삶이다.
어느 존경받는 원로 언론인은 “요즘 기자들이 월급쟁이처럼 되고 있다”며 개탄한다. 상투적인 훈계로 들려 마땅치 않다. 나는 월급쟁이 기자다. 기자들이 본래 월급쟁이인 걸 어쩌란 말이냐. 기자가 특종에 대한 욕심과 비판정신만을 이슬처럼 먹고 산다는 건 만화 같은 이야기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노후가 있다. 월급과 연봉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당연하다. 더 중요한 건, 월급쟁이 기자가 아니라면 이 사회에서 기자로 행세하기 힘들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후광없이 설 수 없듯, 신문기자는 신문사 간판과 분리되어 생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존경받는 원로 언론인의 말에 부응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민해본다.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건 어떤가. 말 그대로 월급쟁이로 살지 않는 기자들을 많이 늘리는 거다. 능력있는 비정규직 기자들을 존중하고 키우는 거다. 장난 치는 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옹호도 아니다.
비월급쟁이 기자, 그러니까 원고료로 먹고사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그들의 대한민국 서식 환경은 열악하다. 일단 무시당하기 일쑤다. 8년 전의 일이다. 한 전문 프리랜서가 코소보 분쟁 지역에서 어렵게 취재한 글과 사진을 받아 지면에 실었다. 이름 뒤에 ‘분쟁취재 전문 기자’라고 달았다. 기사가 나간 뒤 콘텐츠를 비평하는 심의실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왜 ‘기자’라는 크레딧을 함부로 쓰냐는 거였다. 신문사의 정식 스탭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불가피하게 ‘기자’라고 써야 한다면 ‘프리랜서’라는 말을 꼭 붙이라는 주문도 했다. 신문사의 정규직 기자만 ‘기자’ 크레딧을 독점할 수 있다는 말말로 들려 의아했다. 다른 매체의 사례를 찾아보니 프리랜서가 ‘함부로’ 기자 이름을 다는 경우는 없었다. 그럴 경우 ‘기자 사칭’으로 몰리는 분위기였다. 관행은 그랬다. 프리랜서를 대하는 정규직 기자 사회의 정서를 슬그머니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기본적으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먹고살기 힘겨워진 시대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짭짤했다고 한다. 자신의 분명한 취재 영역과 업적,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에겐 호시절이었다. 그들의 글과 사진을 비싸게 사주는 잡지들이 적잖았다. 인터넷이 도래하기 직전, 인쇄매체의 마지막 성시였다. 매체의 편집자들은 해외의 스트레이트한 이슈에 관해서도 취재경비를 대주며 프리랜서들을 썼다. 한데 1990년 중반부터 달라졌다. 먼저 월간지 시장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선 수가 불어난 주간지들이 치열하게 다퉜다. 그것도 잠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결정타였다. 그들은 몹시 외로웠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에겐 특별한 강점이 있다. 특정한 이슈와 분야를 집요하게 탐구할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있다. ‘무책임하게’ 집안사정 돌보지 않고 ‘무한 책임으로’ 취재에 올인하는 불가사의한 열정이 있다. 아무리 연봉을 높이 불러도 정규 신분을 원하지 않는다. 무엇엔가 얽매이지 않을 자유는 그들에게 공기와 같다. 헝가리 태생의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도 정규직 기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라이프>에 팔아먹으며 살았던 프리랜서였다. 그는 1944년 6월6일 목숨을 내놓고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인화과정에서 필름 대다수를 망쳐버린 <라이프> 편집자 탓에 스트레스받다가, 결국 같은 비정규직 사진기자들끼리 연대하여 만든 조직이 ‘매그넘’이었다. 유럽과 일본 언론은 아직도 그러한 프리랜서와의 공생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오고 있다.
갑자기 프리랜서 타령을 하는 건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23명의 피랍 사태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외신만 받아 적었다는 공격을 당했다.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언론인의 카불 입국도 금지시켰다.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이 조치를 해제하라고 했다. 해제하면 취재가 이뤄질까? 단발성 보도는 가능하겠지만, 심층 탐사보도가 가능할까? 아프가니스탄에서 취재 루트와 인맥을 확보한 한국의 정규직 언론인이 얼마나 될까? 장기적 포석으로 이쪽 지역에 전문성을 지닌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을 미리 갖추고 관리해왔더라면 상황이 조금 달랐으리라는 아쉬움이 든다.
말로만 떠들어서 미안하지만, 야성으로 충만한 프리랜서 기자들의 더 멋지게 활약하는 한국 언론의 풍토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인 지원프로그램을 바꾸는 건, 사소하지만 시급한 대안이다. 언론사 소속의 전·현직 정규 기자들뿐 아니라, 허허벌판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비정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도 혜택을 받게 문호를 열어야 한다. 독자들의 알 권리를 위하여, 라고 명분을 대면 너무 낯간지러울 듯하고…. 아무튼 그들에게 글 앞머리에서처럼 이렇게 충고하는 현실은 없었으면 좋겠다. “기자질 그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