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쇼바이벌>에서는 매주 토요일 신인가수들이 굵은 땀과 눈물의 생존게임을 벌인다. 독설의 몇 백자 평을 코앞에서 ‘직방’으로 쏘는 심사위원들이 무대 한쪽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미국산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을 닮은 듯 보이지만, 출전 선수들이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면에선 토종의 혈통을 자랑하고 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방송 사상 최초이자 국내 유일의 ‘신인 육성 사관학교’다.
전국 방방곡곡의 별의별 무대를 다 경험하며 내공을 닦고 실력을 인정받은 뒤 앨범 발매, 즉 프로 데뷔의 감격적인 ‘골인’을 맛보는 게 지구촌 음악계 대개의 순리라면, 앨범을 발표하고도 무대에 설 기회가 별로 없는 한국의 신인가수들은 승리하면 독무대를 연장해주는 <쇼바이벌>의 탄생에 꾸벅 인사라도 올리고 싶을 것이다. 토너먼트 형식의 이 서바이벌쇼에서는 4강을 통과해 결승에 올라 우승하면 그제야 남의 노래가 아닌 자신의 노래를 부를 자격을 준다. 신인이 ‘대’지상파 방송에서 자기 노래를 들려주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요하는지를 이 프로그램은 나름의 치열하고 공정한 룰로 대변한다.
지난 8월11일 방송에서 그 과정을 관통한 ‘S1 그랑프리 가수왕’이 나왔다. ‘에이트’(8eight)라는 3인조 혼성R&B 그룹이다. 베이지라는 여성 솔로가수와 맞붙은 이들은 성공하면 집을 사드리고 싶은 어머니들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 노래했고, 멤버들끼리 손에 손을 꼭 잡은 채 사색이 돼 판정 결과를 기다렸으며, MC 이영자의 우렁찬 호명에 따라 ‘이겼음’을 확인한 뒤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로써 이들은 앞으로 5주나(?) MBC의 대표 음악프로그램인 <쇼! 음악중심>에 출연할 티켓을 얻게 됐다.
대기실, 무대, 객석 등을 입체적으로 오가는 카메라의 생생한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자막과 MC 및 심사위원의 코멘트를 타고 반복적으로 터져나오는 노력, 열정 등의 단어에 ‘아무렴, 그렇고 말고’ 하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결이 끝나면 승자보다 더 먼저 패자에게 앵글을 들이대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거리는 배려있는 연출에도 ‘짠’해지곤 한다. 예쁘지 않아도, 섹시한 개미허리를 갖고 있지 않아도, 재치와 유머를 겸비하지 않아도, ‘백그라운드’가 없어도, 노래를 잘하고 최선을 다하면 ‘챔피언’을 먹을 수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쇼바이벌>의 잣대도 지극히 건강하고 타당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본이 안 돼 있는 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진정한 가치를 되새겨주는 울트라 감동의 쇼가 아닐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에 취해 손에 땀을 쥐고 콧물을 훌쩍이는 것은 <쇼바이벌>이 방송을 타는 57분 몇초간이다. 물론 좀더 빨리 취기에서 벗어나 각성을 맛볼 때도 있다. 가령 1기 우승자의 앙코르송 무대를 배경으로 ‘이제 밝은 날이 찾아왔습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자막을 나열한 순간에는, 그 지나치게 달콤하고 노골적인 희망 찬가에 머쓱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쇼바이벌>이 진행되는 동안이라도 재능, 시스템 등 복합적인 얼개에 대한 고민과 째려보기 모드를 잠시 꺼둔 채 넘쳐 흐르는 신인가수의 열정을 예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 예찬의 대상이 비록 열정, 그 자체라기보다 자정이 되면 풀리는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만만하게 오래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열정의 순진함’에 국한돼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