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여행은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의례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휴가의 목적은 단지 ‘그’를 만나는 것이었다. K, 요제프 K, 그레고르 잠자, 아니 프란츠 카프카. 41년 생애 동안 고향 밖을 거의 벗어나 본 적 없는 그에게 프라하는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맹수의 발톱을 가진 도시”였다. “이 작은 원 안에 나의 일생이 담겨 있다”고 그가 말했던 바로 그 원 안에 발을 디뎌보고 싶었다. 프라하를 향했다.
시작은 난감했다. 진부하지만 고전적인 동선을 구상하고 있던 내가 첫 목적지로 삼은 것은 그의 생가. 뭉텅뭉텅 구획을 나눈 뒤, 점 하나를 대충 찍어놓은 지도로는 도저히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구시가 광장 근처라는 것은 확실했기에, 상점들의 문을 두드렸다. 심드렁한 얼굴과 함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카프카? 몰라.” 결국 곡절 끝에 찾아낸 생가는 문제의 상점들로부터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카프카 티셔츠, 노트, 머그잔, 냉장고 자석을 팔면서도 정작 코앞에 있는 생가를 알지 못하는 이들, 열댓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지척의 거리에서 반나절을 허투루 맴돈 나의 상황이 총체적으로, ‘카프카적’이었다.
유사한 분위기의 여정이 이어졌다. <시골의사>의 단편이 쓰여졌던 푸른 오두막을 찾아갔을 때, 골목의 입구에는 기골이 장대한 남성이 입장료를 수금하고 있었고, 놀랍게도 매표소는 골목 옆의 음식점이었다. 오두막은 보수 공사 중인지 철봉으로 꽁꽁 감싸져 있었는데,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이유로 몇몇 소방관들만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변신>을 집필했던 곳에는 프라하에서 숙박료 순위로는 단연 선두에 있는 고급 호텔이 들어섰고, 그가 일했던 보험회사 자리에는 역시 호텔이 생겼는데 그의 사무실이 있던 곳을 일종의 ‘카프카의 방’식의 객실로 꾸며놓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무리. 역시나 상투적인 종착점으로, 묘지를 찾았다. 내심 <사랑해, 파리>에 등장했던 오스카 와일드풍의 경치를 상상했었을까. 도시 중심부로부터 조금은 떨어진 유대인 공동묘지에는 스산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투박하게 깎인 그의 묘석 앞에 꽃은 거의 없고 듬성듬성 놓인 작은 쪽지들, 동전들, 나뭇가지에 걸린 머리끈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카프카? 몰라”가 돌림노래처럼 머릿속을 맴도는 가운데, 작은 돌멩이에 볼펜 끝을 세우고 서걱서걱 메시지를 남겼다.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를 사랑했으나 그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친구, 카프카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으되 그의 세계를 자서전의 영역으로 축소시켰던 막스 브로드의 예를 들어, 우리가 K가 아닌 카프카의 사적인 삶에 주목하는 것은 작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라고 말했다. 떠나기 전 나는 그 주장을 지지하면서도 나의 여행은 예외라고, 내 젊음을 사로잡았던 치명적인 매혹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일 따름이라고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하지만 자못 경건한 헌사를 그렸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여행은 종종 어그러졌고, 황망했으며, 우스꽝스러웠다. 그래서 이제는 머리를 곧게 들고 대꾸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친구들 앞에서 <심판>을 읽으며 웃음을 터뜨렸다는 카프카, 바로 그가 기꺼이 귀를 기울였을 법한 이야기였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