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은 맹독성이다. 그것도 내성이 없는 독이다. 보면 볼수록 다시 보게 되고, 뒤돌아서면 금세 잔영이 서리는 그의 얼굴은 별다른 징후를 드러내지 않고 시청자를 중독시켜왔다. 코미디계에서는 그가 만들어낸 옥동자와 마빡이를 가리켜 ‘독하고 징한 캐릭터’라고 평가했고, 그의 아내인 황규림씨는 “사귄 지 2개월이 지나자 그가 탤런트 지성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성인보다 전이가 빠른 아이들에게는 특히 중독성이 심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마빡이를 본 아이들은 2년6개월이나 무대에 올랐던 옥동자를 바로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마를 때리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원래 보다보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남이다. (웃음)”
마빡이 정종철이 이번에는 영화라는 독을 품었다. 영화 <챔피언 마빡이>는 <마법경찰 갈갈이와 옥동자> 이후 두 번째로 정종철 자신의 캐릭터를 내건 작품이자, 첫 단독 주연작이다. 제목만 들어도 지금까지 개그맨들이 단체 출연한 아동영화들에 대한 선입견이 기어오르지만, <챔피언 마빡이>는 오히려 그들과 명백한 선을 그으려는 의도로 만든 영화다. 개그맨들의 슬랩스틱 쇼로 일관하지 않고, 개그맨들의 기존 캐릭터를 스토리에 묻어놓고 개인기를 적시적소에 등장시킨다. “어린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은 어쩔 수 없다. 관객을 원망할 게 아니라, 옛날부터 그렇게 만들어온 것을 반성해야 하는 문제다. 나 역시 그런 편견을 지금이라도 고치고 싶은 거다.” 8월6일, 홍대에서 만난 그는 TV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진지모드’였다. 어느덧 데뷔 7년차 개그맨인 그에게 아동영화와 개그에 대한 그만의 독한 의지를 들어봤다.
-영화 때문에 삭발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영화에는 삭발한 장면이 없던데. =이마를 많이 보이게 하려고 삭발을 했다. 아내는 이 기회에 두피관리를 해보라고 하더라. 두피에 여드름이 많았는데, 삭발을 하고 나니 싹 낫더라. 옛날에는 여드름이 없었는데, 결혼하고 살이 찌면서 더 생기는 것 같다. 얼마 전 처음 머리 밀었을 때 찍은 사진을 봤는데, 정말 비호감이더만. (웃음)
-요즘은 <개그콘서트>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불청객’ 코너를 끝내고 한 3주 쉰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쉬고 있다. 방송은 안 하고 있지만, 방학기간이라서 나를 찾는 아이들은 많다. 지방 행사가 많아서 자주 돌아다니는 중이다.
-<챔피언 마빡이>는 어떻게 출연했나. =원래 어린이영화를 계속 찍고 싶었는데, 기회가 많지 않았다. 제작사쪽에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런 의지가 나한테는 너무나 반가웠다.
-아이를 낳은 입장이어서 예전에 출연한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나 <마법경찰…> 때와는 다른 의미가 있었겠다. =내 아이한테 떳떳하고 싶었지. 물론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도 나한테는 소중한 영화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DVD로 보여주었을 때도 감동받을 수 있었으면 했다. 사실 어린이영화를 만드는 환경이 편치가 않다. 최저의 제작비로 단기간 촬영하지만, 또 퀄리티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고민들이 많았지만 결과물에는 만족한다.
-마빡이는 사실 연신 이마만 때리는 매우 단순한 캐릭터다. 하지만 영화는 마빡이 특유의 동작을 영화적으로 해석했다고 봤다. 시나리오 작업에 함께 참여했던 건 아닌가. =시나리오는 우리가 아는 작가와 함께 먼저 만들어놓은 거였다. 원래는 ‘K1 마빡이’란 제목이었는 데, 다른 사건을 집어넣고 교훈적인 내용을 넣으면서 지금의 영화가 된 거다. 교훈은 매우 단순명쾌하다. 좋은 음식 많이 먹고 인스턴트 음식은 먹지 말자는 거지. (웃음)
-이전에 개그맨들이 단체로 출연한 어린이영화들은 완성도보다도 개인기에 치중한 작품들이 많았다. <챔피언 마빡이>는 그와 달리 나름의 스토리라인이 있는 영화다. 남다른 준비를 했을 것 같다. =처음 남기남 감독님이랑 <갈갈이 형제와 드라큐라>를 찍었을 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재미를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개인기와 유행어로 아주 떡칠을 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도저히 볼 수 없는 영화가 만들어지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부모들이 아이를 극장에 데려다놓고 볼일 보러 가는 일을 만들지 말자고 했다. 첫 번째 전략은 일단 마빡이가 웃기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게 나한테는 큰 어려움이었다. 마빡이가 안 웃기면 아이들이 이상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어제 시사회를 가보니 나만의 걱정이었더라.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보는 건 아니었지만, 몰입해서 보더라고. 이번 영화도 최선을 다했지만, 다음 작품은 더 좋은 퀄리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개봉소식이 없었던 영화도 있었다. <마빡캅>이나 <귀신들의 대전쟁>은 어떤 영화들인가. =<마빡캅>은 아직 제작도 하지 않은 영화다. <귀신들의 대전쟁>은 아마 제작자쪽에서만 이런 영화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 같다. <마빡캅> 역시 우리가 스토리를 구상 중인 영화 가운데 하나다. 원래는 ‘옥동캅’을 만들려 했는데, 마빡이가 히트를 하면서 제목을 바꾼 거지. (웃음)
-<마빡캅>은 어떤 내용인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애가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신비한 돌을 줍는다. 그런데 그 돌에는 선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신비한 기가 있었던 거지. 그걸 주운 마빡이가 갑자기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고 악의 무리와 맞선다는 내용이다.
-<스파이더 맨> 같은 초인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네. =(웃음) 아직 더 살을 붙여야 한다. 다음에는 다시 (박)준형이 형과 함께 야구영화를 만들 거다.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라면 다 다루고 싶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는 직접 영화 연출을 하고 싶다고 밝혔더라. =심형래 선배를 보면서 느낀 바가 많다. <디 워>를 보면서 형래 형은 정말 내가 존경해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형래 형이 가고자 하는 길이 단지 꿈만은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어린이영화를 통해서 꿈을 이루고 싶다.
-아무래도 심형래 감독과는 노선이 다르지 않을까. =물론 나랑은 다르지. 나는 SF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다. 컴퓨터그래픽 같은 것도 당연히 모른다. 나는 어른들이 보고 싶어 안달하는 어린이영화를 만들고 싶다. <니모를 찾아서> 같은 영화도 아이들 보다는 어른들이 더 먼저 찾는 작품 아닌가. 내가 정말 감독이 될 수 있다면, 주성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는 자기 사단을 이끌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알콩달콩 영화를 만들지 않나. 나 역시 내 주위 동료 개그맨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무대에서 개그를 하는 것과 영화에서 연기를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를 느끼나. =개그는 생각해야 할 게 정말 많다. 흔히 훌륭한 개그맨은 3박자가 다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PD의 역할과 작가의 역할, 그리고 연기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 재밌는 개그를 만들 수 있다. 직접 짠 아이디어를 풀숏이 올 때 풀지, 타이트한 숏이 올 때 풀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연기를 할 때는 오로지 연기에만 몰두하면 된다. 작가가 쓴 시나리오 안에서 생각하면 되니까. 그런데, (잠시 침묵) 연기는 너무 어렵다. (웃음)
-지금까지 했던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모두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개그가 어렵다고 해도 이제는 어느 정도 관객의 호흡을 쉽게 간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옥동자를 하면서도 나는 이것 말고 또 다른 게 나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주위에서도 정종철이 옥동자 말고 또 할 수 있는 게 있겠냐는 우려를 많이 했다. 그런데 마빡이가 나오면서 2년6개월씩이나 했던 옥동자를 6개월 만에 깨버렸다.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옥동자가 아닌 마빡이로 부른다. 이러니 과연 관객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겠나. 이제는 그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아이디어를 내고 연기를 하려 한다. 물론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받쳐주는 하드웨어(외모)가 있으니 다행이지. (웃음)
-어렸을 때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들었다. .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나온 사진까지 오려낼 정도였으니까. (웃음) 나는 미팅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친구들 따라 나가면 다른 애들은 쌍쌍으로 나가는데, 언제나 나 혼자만 지하철 타고 집으로 오곤 했다. 그때는 얼마나 서러웠는지. 만날 엄마한테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피부는 또 왜 이러냐고 투정하곤 했다. (웃음)
-개그맨으로서는 정말 축복받은 외모 아닌가. =지금은 가끔씩 내 키가 지금보다 더 작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평소 아이들이 나를 보면 ‘마빡아!’, ‘옥동자!’이러지 ‘마빡이 아저씨!’라고 하진 않는다. 지금 내 키가 164cm인데, 아이들이 작은 나를 보고 더욱 친숙하게 느끼는 것이다. 아마 내가 3cm만 더 작았다면 아이들이 나를 더욱 친한 친구처럼 느꼈을 거다. (웃음)
-어느 기사를 보니 영화배우 원빈과 친한 사이라고 해서 놀랐다. =지금은 연락도 안 된다. 친하다고 이야기하지도 말라. (웃음) 처음 만난 건 변우민 형 때문이었다. 형 집에 갔더니, 원빈이 와 있더라고. 나이가 동갑인데, 사는 집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 와서 자주 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러다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었는데, 이후로 연락이 없더라고. (일동 웃음)
-개그맨이 되려고 했던 건 어떤 계기였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개그맨이 하고 싶었다. 내 스스로 외모 때문에 자꾸 비관을 하다보니 정말 못살겠더라. 그래서 오히려 내가 먼저 나를 드러내보자고 생각했다. 일부러 게걸거리고 웃으면서 다니기도 했고, 미팅 나가서 까여도 좋다고 실실거렸다. 그랬더니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사실, 원래는 전형적인 A형 성격이었는데 그렇게 살다보니 성격까지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무척이나 다사다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장난이 너무 심했다. (웃음) 남의 집 물통에다 오줌을 싸버리기도 했으니까. 당시에는 물을 사 마시는 집이 많이 없었는데, 우리 아랫집이 물을 사 마셨다. 그냥 보기에 꼴사나웠다. 그래서 그 통에다가 오줌을 쌌지. 그런데 안 걸렸다. (일동 웃음) 며칠 지나니까 빈 통으로 나와 있더라고. (웃음)
-흔히 알려진 당신의 과거는 냉면집 주방보조다. 그외에도 많은 일을 했을 것 같은데. =목욕탕 청소도 하고, 용산에서 컴퓨터 조립도 했다. 용산에서 일할 때가 정말 기억에 남는다. 일단 돈을 많이 떼어먹었지. 흔히 말하는 용팔이라고 있지 않나. 천원짜리 부품을 만원에 팔고서는 9천원을 내 주머니에 넣곤 했다. 여러 일들을 전전했지만, 그건 고생도 아니다. 지금도 더 열심히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걸 고생이라고 한다면 배부른 소리지.
-KBS 개그맨 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무명 개그맨으로 겪어야 했던 설움은 없었나. =나는 그런 게 없었다. 엄마가 기도를 열심히 해줘서…. (웃음) 방송사에 들어가자마자 2주 뒤에 바로 <개그콘서트> 무대에서 ‘게임맨’을 했다. 오락실 소리 내는 거 있지 않나. “또또로 또로~” 이러는 거. 그때 PD가 했던 말이 “밑천이 다 떨어질 때까지 한번 해봐라”였다. 한 7개월을 하니까 밑천이 바닥나더라. 그 이후에 갈갈이 삼형제를 하면서 온곡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목소리도 흉내내고, 또 그러다가 옥동자를 했던 거지.
-캐릭터나 소재를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기준은 따로 없다. 웃기면 장땡이지. (웃음) 하지만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안 한다. 내가 만약 준형이 형처럼 연기를 하라면 못할 것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떻게 표현할까요? 전라도요!” 봐라. 못하지 않나. (웃음)
-한때는 얼굴로만 웃기려고 하는 개그맨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나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웃기려고 했을 뿐이다. 지금도 너는 왜 얼굴로만 웃기려고 하냐, 다른 걸 해봐라부터 시작해서 여러 테러들이 들어온다. (웃음) 그런데 요즘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정)준하 형이 6천만원을 기부해도 사람들이 욕하는 시대 아닌가. 탈레반 때문에 사람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는데도 거기에다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시대다. 요즘은 정말 키보드가 사람을 버리는구나 싶다. 어차피 실제로 만나보면 아기들일 텐데, 그 애들한테 뭘 어쩌겠나. 그냥 웃어넘기거나, 리플을 안 보는 거지. (웃음)
-개그맨이란 직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겪는 고충은 없나.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없어졌다. 옛날에야 코미디 볼 시간 있으면 신문이나 더 보라고 했지만 지금은 웃음이 보약인 시대 아닌가. 요즘은 (유)재석이 형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건 버라이어티 쇼라는 반찬이 있고, 정통 코미디라는 반찬이 있는데, 사람들이 버라이어티 쇼 하나만 먹는다고 나머지를 없애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통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입맛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정통 코미디를 하는 입장에서 버라이어티 쇼 MC와 정통 개그맨들에 대한 대우가 다르다는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웃음이라는 하나의 밥도 여러 반찬을 곁들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본인은 버라이어티 쇼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가. =나도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하지만 나까지 그리로 가면 정통 코미디는 누가 하겠나. 생판 모르는 애들만 코미디를 한다고 하면 그걸 사람들이 보겠나. 또 내 스타일이 버라이어티 쇼에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 좋은 입담을 가진 것도 아니지 않나. 나는 무대 위에서 연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어울리는 개그맨이다.
-지난해 KBS 연예대상에서 “평생 개그만 하겠다”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평생 개그를 꿈꾸는 입장에서 그려놓은 그림은 무엇인가. =산을 계속 넘고 싶다. 나에게는 옥동자란 산도 있고, 마빡이란 산도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버라이어티 쇼나 뮤지컬, 영화란 산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산들을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넘고 싶다. 산에 있는 나무와 이끼나 습기들을 감상하고 만끽하면서 산을 타고 싶다. 이 산이 아닌 것 같으면, 저 산도 가보고.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들도 정종철이가 저렇게 가는 구나 하며 편안히 봐주었으면 좋겠다.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지는 말고. (웃음)
-<개그콘서트>에는 언제쯤 복귀하나. =또 때가 되면 하겠지. 여러 아이디어들을 준비하고 있다. 일단은 다시 대학로에서 후배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아 그리고 피부관리도 좀 해야지. 요즘 같은 HD시대에 계속 SD형 개그맨으로만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피부를 가꿔서 이제는 훈남 개그맨으로 남고 싶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