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의 일본 여자가 핀란드에서 주먹밥 가게를 하는 이야기 <카모메 식당>은 낯가림이 있는 영화다. 세 인물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조심스레 다가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도 관객에게 쑥스러워하며 말을 건다. 대사와 대사 사이에 놓인 빈 공간이 느긋한 리듬으로 핀란드에 도착한 여자들을 감싸지만, 영화는 그 순간 문득 아쉬운 이별을 고한다. 고독과 따뜻함이 적절히 배어 있는 맛, 애초 일본에서 단 2개관으로 시작한 <카모메 식당>은 입소문을 타고 장기 상영에 들어갔고 5억엔이 넘는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 리턴즈로 공개된 한국에서도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8월2일 정식 개봉했다. 주먹밥이 핀란드 사람들을 매료시켰듯, 아주 천천히 사람들과 친해진 영화. 그 이야기의 주인공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을 8월6일 만났다.
-무레 요코가 이 영화를 위해 소설을 썼다고 알고 있다. =데뷔작 때 알게 된 프로듀서가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나도 흥미가 있었고 이야기를 하면서 핀란드로 결정했다. 그 뒤 프로듀서가 무레 요코에게 소설을 부탁했고, 우리가 핀란드에서 조사한 사항들을 무레에게 보여줬다. 그렇게 각본이 쓰여졌다.
-왜 핀란드로 결정한 건가. =미국, 유럽, 영국, 프랑스도 아닌 다른 느낌이랄까. 핀란드에 가서 굉장히 놀란 건 사람들이 거리에서 전혀 뛰지 않는다는 거다. 초조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놀면서 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극중 여주인공 사치에의 대사에서도 언급되지만, 왜 갈매기인가. =핀란드의 갈매기를 처음 봤을 때 살이 피둥피둥 찐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치에의 대사에는 그 갈매기가 고양이를 연상시킨다는 말이 있다. 영화에도 고양이가 등장하고, 실제로 당신도 고양이 3마리를 기르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반드시 고양이를 어딘가에 출연시켜야 한다는 게 있다. (웃음) 내 맘대로 정한 거지만, 왠지 그러면 러키하다는 느낌이 든다. (웃음) 또 <카모메 식당>에서는 마사코가 식당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고양이다. 그런 이유로 고양이는 왠지 딱 맞아떨어진다.
-세명의 여자들이 서로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재미있었다. 낯가림을 하면서도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달까. =인물 사이의 거리가 매우 중요했다. 그들은 서로 친구 사이지만 모두 한명 한명 독립해서 살아간다. 그건 내 스스로도 지니고 싶은 태도고. 그래서 아마 세명이 계속 카모메 식당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미도리는 핀란드 사람이랑 결혼할 수도 있고, 마사코는 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갈 수도 있다. 사치에도 당분간은 열심히 식당을 하겠지만 언젠가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런 거리는 관객이 상상해서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영화는 핀란드에 간 일본인들의 이야기지만, 문화적인 충돌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적인 차이에 무심해 보이는데. =일본과 핀란드의 문화적인 차이를 부각시키는 건 너무 재미없다. 전혀 그러고 싶진 않았다. 뭘 노리고 찍는지 너무 뻔하지 않나.
-촬영 중에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 =스탭 중 3분의 2가 핀란드인이었다. 처음 3일 동안은 핀란드 사람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화가 났다. 하지만 결국 내가 포기해서 그들의 베이스에 맞췄다.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3일간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베이스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건가. =그건 아니다. 그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단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웃음)
-2001년작 <별군, 꿈군>(星ノくん·夢ノくん, 우주인이 지구에 수학여행을 온다는 이야기)부터 <요시노 이발관> <사랑은 5!7!5!> 그리고 <카모메 식당>까지 당신의 작품에는 항상 문화적인 차이가 등장한다. 평소의 관심사인 건가. =그렇진 않다. 테마를 갖고 영화를 만들진 않으니까.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내가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어서 일본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주로 영화를 시작하는 출발점은 어떤 건가. =그건 항상 생각하고 있다. 습관처럼 상상하고 망상한다. 어릴 때부터 계속 그랬다. 잘 때에도 꿈에서 본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어나서 메모해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그건 비밀이다. (웃음)
-차기작과 관련된 건가. =아니다. 차기작은 이미 찍어놓은 게 있다. 고바야시 사토미, 가세 료, 이치카와 미카코 등이 나오는 <안경>이란 영화다. 모두 안경을 쓰고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됐다.
-<과거가 없는 남자>의 마르코 펠트로가 나온다. 어떻게 섭외한 건가. =일단 와달라고 부탁을 했고, 오디션을 봤다. 몇 십명을 봤지만 역시 마르코가 가장 마음에 들더라. 대사가 없어도 제대로 된 분위기의 연기를 해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일본 개봉 무렵에 배우들이 한 인터뷰를 보니 모두 공통적으로 감독이 낯가림이 심하다고 하더라. =정말 낯가림이 심하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된달까. (웃음) 배우들이 모두 예전부터 동경해오던 사람들이라 더욱 긴장해서 말을 못한 점도 있지만, 아마 나의 이런 모습이 의식은 못해도 영화에 반영됐을 거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만들 때 나만 알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하진 않는다. 제대로 관객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관객의 기분이 되어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런 부분이 영화를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치진 않나. =그냥 일이니까. 촬영을 비롯해서 사람들과 만나서 일을 하는 건 2∼3개월 정도다. 그전에 혼자 각본을 쓰거나 나중에 편집을 하는 시간이 더 길다. 나는 그 시간을 매우 좋아한다.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시간에는 좀 무리해서 열심히 하는 거다. (웃음) 하지만 2~3개월 정도면 참을 수 있다. (웃음)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나. =예전엔 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처음엔 사진가가 되고 싶어서 사진을 배웠지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고, 이왕에 하는 거면 할리우드에 가자고 생각했다. 영화 공부를 시작한 뒤에도 전혀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학교 커리큘럼이 너무 엄격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촬영, 편집, 각본 모두 다 했다. 문장이라면 써본 적도 없었지만 하나의 각본이 완성되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좋아하는 감독이나 영화가 있나. =역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 짐 자무시가 좋다. 아메리카 인디스라고 불리는 장르를 매우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