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웅필 드로잉전-설레임> 8월8∼26일/ 두아트갤러리/ 02-738-2522
배우의 생명력이 연기라면 화가에겐 표현력이다. 제아무리 매력적인 이야기라도 시각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작가라면 유능할 수 없다. 전시를 열며 작품제작 전 과정을 벽면에 시연해보인 작가가 있다. 지지난해 말 <일그러진 얼굴의 민머리 자화상> 개인전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변웅필(38). 연필과 수채물감으로 소담하게 그린 드로잉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부제 ‘설레임’만큼이나 감칠맛 넘치는 그의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일상의 자화상을 만난 듯하다.
“원래 드로잉 작품을 유화 작품보다 먼저 시작했어요. 드로잉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 속의 인체들은 주관적인 구별이 없습니다. 성별이나 헤어스타일, 의상 역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표현된 주인공들이 누구인가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인체의 형상을 바라보며 그 형상을 통해 보는 이가 스스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일까,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일상의 파노라마다. 부부싸움, 여고동창, 가족, 이별, 설레임…. 모두가 우리의 친숙한 이야기다. 특히 연예인 스타를 꿈꾸는 어린 소녀의 표정을 담은 <연예인 지망생>은 더욱 인상 깊다. 고단한 단잠의 꿈속에서나마 먼 미래 ‘스타’가 된 자신의 모습을 갈망하는 애절한 장면은 볼수록 애잔하다. 변웅필의 그림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확히 말해 그의 인물엔 표정이 없다. 다만 정황을 짐작할 만큼의 현상만을 중계해준다. 왜 작가는 그 인물들에 자신의 감정처리를 생략하고 있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은 평소 익숙해진 사물이나 형상들일 뿐 내 작업엔 처음부터 줄거리가 없습니다. 생각 속의 무엇을 설명하고자 그린다기보다 그려진 것을 상상하여 줄거리가 스스로 만들어지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등장하는 인물에서 표정의 인위적인 설정은 무의미해집니다. 작가로서 화면의 조형성과 구성력 그리고 색과 형상의 어우러짐을 충실히 제시할 뿐 그 다음은 보는 사람의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10년 넘는 세월을 독일에서 유학했다. 오랜 체류기간을 마치고 2년 전 귀국해 그가 한국에 첫선을 보인 것은 살색 가득한 얼굴이 전면에 클로즈업된 초상화 시리즈였다. 하지만, 그는 유화 작품 이전에 이미 조각, 드로잉, 애니메이션 등 매우 다양한 표현기법을 구축했다. 지극히 생략적이고 함축적인 동양의 전통적 사고와 이성적인 분석력을 바탕에 두고 있으면서도 사유적인 철학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의 작품세계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가 벽 위에 직접 그려낸 ‘월 페인팅’과 일반 드로잉 작품 이외에도 최신 작품에서 입에 연필을 물거나 나뭇잎으로 얼굴을 가린 <민머리 자화상> 시리즈 유화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