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運れ狼:三途の川の乳母車)
1972년, 감독 미스미 겐지
출연 와카야마 도미사부로, 도미카와 아키히로
장르 무협
출시 아이비젼
“갑자기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가. 아, 내 목에서 나고 있구나. 이 소리는 늘 다른 이의 목에서 들렸건만, 이젠 내가 듣는구나. 내 목을 가르는 바람소리여!” 저승사자라는 별명의 자객이 주인공의 칼에 목을 베어 쓰러지면서 내뱉는 마지막 대사다. 주인공은 비운의 닌자, 천하제일의 검객이며 고독한 킬러. 그의 칼이 바람을 가르면 어김없이 분수처럼 피가 솟고, 잘려나간 팔과 다리와 목이 사방을 뒹군다. 당대의 고수들이 쉴새없이 그의 목을 노리지만, 그는 결코 당하지 않는다. 예정된 살육전을 치른 뒤 작은 웃음조차 없는 어두운 얼굴로, 5살난 아들을 작은 달구지에 태운 채 황량한 들판을 걸어갈 뿐이다. 때론 그만큼 깊고 어두운 눈매를 지닌 적의 목을 벨 때, 그의 그늘은 더욱 깊어간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은 이렇게 유치하고 감상적이다. 동시에 아주 자극적이고 매혹적이다. 원작 <아이 딸린 늑대>는 일본잡지에 연재되었던 만화인데, 만화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28회의 TV시리즈와 7편의 시리즈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은 7편의 영화 중 제2편. 주인공 오가미 이토는 원래 에도시대에 많은 닌자를 거느리고 있던 유기유가문 소속이었지만 누명을 쓰고 야기유의 자객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자객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에선 아와마을의 청부로 막부가 보낸 전설적인 3형제 자객을 상대한다.
이른바 일본 B급 장르영화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이 영화엔 새로운 점이 있다. 고독한 킬러야 동서고금의 픽션들이 애호한 주인공이고, 그가 가공할 솜씨의 적들과 싸워 이긴다는 이야기 역시 극히 상투적이지만 <아들을 동반한 검객>은 주인공이 피투성이 검투를 어린 아들과 함께 치러야 한다는 특별한 곤경을 첨가하면서 그의 캐릭터를 더욱 고독하고 비정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뭔가 달라보이고 세련돼 보이려는 노력을 접고, 상투적인 캐릭터의 상투적인 액션과 제스처를 노골적으로 과장하고 반복하는 데 있다. 피가 솟아오른는 장면이 반복 등장하고, 아주 투박한 클로즈업으로 주인공의 경악하는 표정이 잡혀도 그건 더이상 촌스럽지 않고 멋진 것이다. 소란스럽고 빠른 홍콩무협에만 익숙한 관객이라면 <아들을 동반한 관객>의 정적인 연출에 마음을 뺏길지도 모르겠다. 결투장면만 제외하면 이 영화는 인적없는 들판을 걸어가는 특별한 부자의 고요하게 느린 여정을 긴 호흡으로 그린다. 이 때문에 뒤이을 결투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다. 주연을 맡은 와카야마 도미사부로는 실제 유도 4단에 뛰어난 검술의 소유자로 당대 최고의 검객배우로 이름을 떨쳤으며, <블랙 레인> 같은 미국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허문영 moon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