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거래> 7월12일~9월30일/ 대학로 쇼틱씨어터 1관/ 02-762-9190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오늘 거리에서 우연히 옷깃을 스친 사람이 미래의 배우자일 수 있고, 버스에서 말다툼 끝에 주먹 다짐까지 한 사람이 미래의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은 드넓은 듯하나 한편으로 무척이나 좁아서 오늘 만난 사람과 내일 어디서 어떻게 마주할지 짐작하기 힘들다. 지인 중 여섯 사람만 건너면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는 ‘케빈 베이컨 게임’이 한때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것은 어쩌면 같은 이유이지 않았을까. 연극 <유쾌한 거래>가 내세운 것도 꼬이고 꼬인 관계들이다. 평범한 듯하던 등장인물들의 이면에는 이상한 어둠이 숨어 있고, 그들의 비밀이 폭로되면서 극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서민 가장 박민수는 아픈 아내 안정숙과 아들의 병원비를 감당치 못해 사채를 빌린다. 오랜만에 기운을 차린 정숙은 민수의 생일을 맞아 뜨거운 밤(?)을 준비하지만 알고 보니 그날 9시가 사채 빚을 갚아야 하는 데드라인이다. 아직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액수일지언정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돈을 세어보며 금실 좋은 이들 부부는 즐거워한다. 그러나 운명은 처음부터 그들 편이 아니었을까. 바로 그때 스타킹을 뒤집어쓴 강도 김기식이 들이닥쳐 돈을 훔쳐 달아나려 한다. 여기까지는 얼마간 판에 박힌 인간형이다. 민수는 능력은 없을지 몰라도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정숙은 이름과는 달리 성적으로 적극적이지만 남편을 위할 줄 안다. 기식이 정숙의 얼굴이 낯익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들 사이의 일상성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한다.
대강의 얼개를 그리자면 이렇다. 정숙은 기식의 옛 애인이다. 친구의 빚을 대신 껴안은 기식이 감옥에 간 사이 그녀는 지금의 남편, 민수를 만난다. 민수와 결혼한 뒤 그녀가 낳은 아들은 사실 기식의 아이다. 민수는 이 사실을 알고도 정숙과 아들을 묵묵하게 부양한 것이다. 민수, 정숙, 기식의 삼각관계도 충격적이건만 이 작품은 여기서 한창 멀리 나아간다. 사채 빚에서 부족한 돈을 먼저 가져오는 사람과 함께 살겠노라는 정숙의 결단에 두 남자가 강도질에 나선 것. 기식은 이혼녀 유미의 집을 털려다 도리어 호되게 당하고, 민수는 광신도 미연의 집에 잠입했다 잠자리를 함께할 것을 제안받는다. 성관계를 걸고 돈을 받아낸 민수가 사채업자에게 달려가고 기식이 그를 돕는 가운데 유미와 미연이 정숙의 집에 들이닥치면서 이들은 은연중에 삶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지러운 인간사와 연결되는 것은 대부업, 에이즈, 불륜, 이혼, 동성애, 종교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들. 그러나 무거운 이슈들을 다루면서도 <유쾌한 거래>는 코믹함을 잃지 않는다. 예컨대 칼을 던져 민수를 위협하던 깡패 깡통은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며 말도 안 되는 영어 단어를 내뱉고, 남편의 무심함에 분노하던 유미는 어리버리한 기식을 희롱하는가 하면, 지나치게 종교를 맹신하는 미연은 찬송가를 부르며 이상한 춤을 춰대는 식이다. 과한 감이 없지 않지만 각종 쟁점들을 희화화시키는 이런 방식은 관객의 관심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환기시키며 가끔씩은 주체할 수 없는 폭소를 선사하기도 한다.
연극 <내 아내의 남편은 누구인가> <짬뽕> 등의 작가 겸 연출가 윤정환이 직접 쓰고 연출한 이 작품에는 백지원, 최재섭, 이건영, 임혜란, 김원식 등이 출연해 카리스마를 뽐낸다. 올해 5월30일부터 6월17일까지 관객을 찾았고, 7월12일부터 9월30일까지 연장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