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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의 CF] 불편해서 못 봐주겠어요

성희롱 코드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한 음료수 CF가 주는 불쾌함

실은 이 칼럼을 시작할 무렵부터 얘기하고 싶던 CF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계속 주저주저했던 이유는 ‘과연 CF에 윤리적 잣대를 가져다 써도 되는가’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윤리라는 것이 사람마다 그 기준선이 조금씩 다른 법이라 언제나 애매모호하잖은가. 그러나 광고 문법으로만 보자면 꽤나 잘 만든 CF인 대부업 광고들이- 온 국민이 따라 부르는 무이자송이라니 효과로만 보자면 거의 최고 수준이다- 지탄을 받고 있는 세상인 걸 보면 한번 짚고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하긴, 애초에 대한민국 광고는 일반 국민의 정서를 해치는지 아닌지 사전심의도 거치는 이 마당에.

길게 변명처럼 가져다 붙이며 도덕 선생적 잣대로 이야기하려는 CF는 ‘아X락’이라는 음료 CF다. 보통 한 시즌에 하나씩 채널 돌아가게 만드는 불편한 광고들이 튀어나오게 마련인데 개인적 자동 재핑 (Zapping : TV를 시청할 때 광고나 흥미없는 부분이 나오면 다른 채널 버튼을 눌러 흥미로운 부분만 연속해서 찾아가는 시청 패턴) 랭킹에서 2007년 1위 자리를 아직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CF다. 볼 때마다 민망하고 불편해서 얼굴이 찌푸려진다.

이 CF가 광고하는 제품은 투명한 캔음료다. 그래서 속이 들여다보인다는 투명성을 제품의 차별점으로 내세워 그걸 강조하는 광고를 만들어낸 것 까지는 오케이. 모델이 어여쁜 소녀라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 ‘속 보인다’라는 컨셉을 구현하는 소재가 왜 하필이면 ‘치마 속’이냔 말이지. 앳된 소녀 모델의 치마를 들추며, 그것을 리와인드까지 해서, 그 위에 ‘얼레리 꼴레리’ 멜로디에서 따온 ‘보일락 말락~’이라는 시엠송까지 얹혀서 보여주는데 아이고 민망하여라. 게다가 더 기분이 나쁜 건 마지막 모델의 환한 미소. 치마 들춰지고 놀림당하는데 내 하루의 즐거움이라니 대략 난감이로소이다.

비키니 차림으로 거의 벗고 등장하는 CF도 나오는 마당에 뭐가 문제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치마가 들춰진다는 설정 자체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문제다. 어릴 적 남자애들에게는 놀이, 여자애들에게는 공포였던 ‘아이스께끼’를 생각해보자. 단순히 어린애들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건 당한 사람에게 크나큰 수치심을 주는 일종의 성희롱이다. 그 기분 나쁜 기억에 평생토록 치마입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교육시키고 있다고 들었다. 근데 애도 아니고 열여덟 된 여자애 치마 속을 그렇게 노래까지 곁들여가며 즐겁게 놀려대도 되는 걸까.

이 CF의 불편함은 모델의 다리가 많이 드러나서가 아니라 상황에서 온다. 이건 선정성의 문제를 넘어선다. 선정적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감정, 특히 욕정(欲情)을 북돋워 일으키는 것’이라고 나오며, 성희롱은 ‘이성에게 상대편의 의사에 관계없이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행동’이라고 적혀 있다. 최근 모 축구선수가 훌떡 벗고 나와 잔근육을 자랑하거나, 남녀의 진한 프렌치 키스가 나오는 커피 광고는 선정성을 무기로 섹스어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섹스 어필은 상당히 효과적인 광고문법이다. 그러나 ‘아X락’은 그 ‘치마 속’을 들춰내는 상황 자체가 보는 이들에게 성적인 것과 연관된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재미있는 점은 이 CF에 대한 남녀의 반응이 꽤나 다르다는 사실이다. 주변 여성들은 ‘기분 나쁘다’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몇몇 남성들은 ‘보여주려면 다 보여주지 왜 찔끔거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 CF가 더욱더 걱정스러운 것은 일부 남성들이 잘 자각하지 못하는 치마 속 관찰에 대한 여성들의 불편함을 CF 말미에서 보이는 소녀 모델의 환한 미소로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이 제품의 타깃이 남성들이라면 일부 성공적인 CF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음료를 마시는 주 타깃은 젊은 여성들인걸. 뭐, 하긴 ‘보일락 말락~’ 이라는 시엠송이 입에 붙기는 하니 분명 신제품의 각인 효과는 있기도 하겠다. 물론 CF가 도덕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공익광고처럼 착한 얘기만 반복한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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