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뭔가 불만에 가득하고 귀찮다는 듯한 그의 표정은 이 인터뷰가 잘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자 그는 솔직한 속내를 정연한 논리로 줄줄 풀어냈다. 어쩌면 김C라는 인물 자체가 첫인상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인상과 달리 그는 탁월한 미성의 소유자이며, 어린 날 10년간 운동선수로 뛰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 등 문화 전반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다. 그런 그이기에 <별빛 속으로>를 통해 영화 연기자로 데뷔한다고 했을 때도 별다른 놀라움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영화에서 ‘노란 셔츠’라는 역할을 맡아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출연했지만, 영화의 중심이 되는 수영(정경호)과 수지(차수연)의 결정적 연결고리가 된다. 하지만 ‘노란 셔츠’는 잠깐 등장했다가 금세 사라지는 탓에 그 정체를 확실히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김C라는 인물 또한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자주 만나고 있지만 그의 실체는, 정체는 그닥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하는 일도 많고 욕심도 많으며 고민하는 것도 많은 김C의 이면을 들춰본다.
-바빠 보인다. =원래는 그리 바쁘지는 않은데, 요즘 ‘뜨거운 감자’ 외에 ‘페퍼민트 클럽’이라는 이름의 서브 밴드를 만들어서 어제까지 녹음을 하느라 좀 빠듯했다. 자우림의 기타리스트 이선규와 우리 팀 베이스 치는 친구와 셋이서 만들었다. 이선규는 일산 동네 친구인데, 동네에서 술 마시다가 우리도 곡이나 한번 만들어볼까, 하면서 시작했다. 재미로 말이다. 앨범 제목도 <No Hope>다.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기대를 안 건다는 이야기다. 음악이나 영화나 글쓰기나 놀이문화가 발전해서 일이 된 게 많은데, 하다보니 점점 욕심이 생겨서 자연 기대를 하게 되더라. 기대를 하게 되니 실망도 그에 비례하게 되고, 상처도 커지고. 그럴 땐 난 역시 주류문화에 섞일 수 없는 건가, 그렇게 되더라. 그래서 아예 기대하지 말자는 거다. 앨범작업을 할 때도 무언가를 막 하려 하다가도 ‘야 노 호프… 스톱, 스톱’ 그렇게 되는 거다.
-<별빛 속으로>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그것 역시 아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이거나 한번 해볼까, 이렇게 된 셈이다. 제작사인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와 절친한 사이이고, 황규덕 감독님도 부인과 함께 우리 공연에 와서 음악을 좋아해주셨다. 감독님도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이나 내가 영화배우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어서 출연을 하게 됐다. 영화음악도 자연스럽게 맡게 됐다.
-처음부터 ‘노란 셔츠’ 역할을 제안받았나. =그렇다. 70년대가 배경인 영화잖나. 사전 미팅을 했는데, 감독님이 그러더라. 너는 지금 이대로 오면 된다고. 심지어 머리도 전혀 안 만진 채로 촬영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70년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던 거다.
-출연하는 분량이 적어서 좀 아쉬웠다. =처음에는 ‘에이 또 요만큼인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양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딱 거기까지만 나오는 게 좋은 것 같다. 나는 폭넓은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폭좁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 회장님도 됐다가 화가도 됐다가 그러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내 안에 감춰져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영화를 찍으면서 아쉬웠던 대목이 있었다고 들었다. =알려진 대로 편집된 장면이 있다. 김민선과 손을 마주대고 “느껴져, 우리 사랑이?”라고 말하며 교감하는 신이었는데, 처음 찍었던 장면은 마음에 들었다. 굉장히 집중해서 찍었기 때문에. 그런데 조명이 뭔가 안 맞아서 그림이 날아갔다더라. 재촬영까지 몇번 했는데 그때는 이미 어색해졌다. 살아가면서도 아기에게 말고는 사랑한다는 말을 좀처럼 밖으로 하지 못한다. 그런 것을 쑥스러워하는 세대인 것 같다. 사랑이란 단어를 가사로 쓰는 것도 쑥스러워한다. 그 단어를 남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느껴져, 우리 사랑이?”라는 단순한 대사인데, 그걸 마음속으로 꾹 담아서 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 그래서 결국 제대로 그걸 못했다. 내 연기가 폭넓지 않다는 게 그런 것 같다.
-<별빛 속으로>는 부천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는데, 개막식 행사에 참여하면서 뿌듯했을 것 같다. =나로서는 그게 좀 아쉽더라. 그날 그런 행사가 이뤄지는 줄 몰랐다. 레드 카펫 행사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영화만 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외양적으로도 준비가 안 됐고, 머릿속으로도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참석했다. 나는 원래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아이다, 왜 웃냐. 진짜다. 음악을 열심히 한 것도 그렇고, 다른 것도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공연 때도 맨앞에 남자 관객이 서 있으면 매니저를 시켜서 뒤로 가라고 한다. (웃음) 그럴 정도로 잘 보이고 싶었는데 아쉽다.
-‘노란 셔츠’의 외모뿐 아니라 내면 또한 비슷하다고 느꼈나. =그렇지는 않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다는 배역이 있다면 대본을 중간까지만 읽어봐도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성규 대표, 정경호, 감독님 다 아는 분들이었고,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내가 도와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개런티도 원래 이 정도 받는다고 하면 요만큼만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출연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적으로 보면 내가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상영할 때 몇번 갔는데 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다 웃더라. 사실 굉장히 진지한 영화인데, 그렇게 내용과 상관없이 내가 가진 단 한 가지 이미지 때문에 다 웃어버리니까 누를 끼치는 것 같았다.
-그 웃음이 기분 나빴나.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관객이 영화에 집중을 안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 장면은 이주일 아저씨가 나와도 웃을 상황은 아닌데 말이다. 물론 내가 나오는 두 번째 신부터는 전혀 웃지 않았지만.
-그동안 목소리 출연 경력은 있지만, 영화에서 직접 연기한 것은 처음 아닌가. =사실은 두 번째다. <거칠마루>에 잠시 나왔다. 그 영화 전체에 걸쳐 내레이션을 했는데, 내가 주인공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입장이다 보니 주인공을 만나는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만들게 됐다. 그 한신 찍은 것 말고 영화는 처음이다.
-TV에서는 여러 번 연기를 했는데. =MBC 베스트극장 두편이 있다. 김보경, 김동완과 출연했던 <잘 지내나요 청춘>과 내가 주인공인 만화가로 나왔던 <로맨스 파파>. 케이블에서 방영한 3부작 미니시리즈 <추락천사 제니>에서도 주연으로 나왔다. 그리고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가 있다. 거기선 어느 정도 고정 출연이었는데, 촬영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도망쳐나왔다. 전 스탭 통틀어서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졸속으로 느껴질 만큼 너무 허겁지겁 찍더라. 이런 것을 지속적으로 하기에는 내 에너지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못하겠다고 하면서 나왔다. 굉장히 강력한 협박과 회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좆까요, 그냥 안 할래요’ 하고 나와버렸다.
-꽤 여러 편에 출연했는데, 애초부터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친구와 광고 찍기 놀이 같은 것을 했다. 콜라 같은 제품의 광고를 놓고 콘티부터 만들기도 했다. 콘티 짜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중에 커서 광고회사에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콧물이 흘러나와 슥 닦았는데, 코 아래 남은 콧물의 모양이 나이키 로고라거나. 나중에 나이키 관계자도 만나봤는데 그 회사는 한국 지사에서 광고를 독자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만든다고 하더라. 콜라 광고도 만든 적이 있다. 콜라 광고를 보면 다들 맛있다, 좋다고만 하는데, 우리가 만든 것은 40년간 콜라를 마셨다는 어부 할아버지가 “마셔보니 별로네요”라고 하는 거다. 맛이 별로인데도 40년 동안 마셨다는 점을 강조하자, 평범함 속의 특별함 뭐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뭔가를 뒤트는 데 취미가 있었나보다. =어릴 때 <전투> 같은 드라마를 보면 총알이 빗발치는데 상관이 “김 이병!” 하고 부르면 막 뛰어나가잖나. 그런데 어린 나이에 그게 너무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김 이병!” 그러면 “좆까!”, 뭐 이런 식으로 놀았다. 마징가Z 놀이를 할 때도 나는 마징가가 싫었다. 그래서 마징가를 괴롭히는 역을 늘 맡곤 했다
-그래도 <별빛 속으로>는 그렇게 막 뒤틀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사실,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 작가들이 나를 굉장히 싫어한다. 나는 대본을 잘 못 외운다. 그래서 상황이 상대방과 나의 갈등이라고 한다면, ‘내가 얘를 막 싫어하면 되는구나’ 하면서 내 식으로 막 쏟아붓는다. 그러고서 나중에 작가들 만나면 굉장히 싫어한다. 자기는 대본을 쓸 때 이런저런 단어를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니까. 그런데 영화는 아니더라. 그 대사 그대로 해야 했다. 물론 내가 애드리브해서 좋으면 넘어갈 텐데, 한 8시간 기다리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대사를 외우는 것 있잖나. 대사도 몇 마디 없고.
-연기의 어떤 점이 좋은가.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에서는 패널이 물어보는 것에 대한 대답만 할 수 있는데, 연기는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면 나를 약간 더 실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은 이게 나야, 이렇게 나를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 같다.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굉장히 비열한 쪽 연기를 잘할 것 같다. 사기도 잘 치고. 그러니까 겉으로는 너무 착하고 나이스할 것 같은데, 되게 비열한 인간 역할에 관심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캐스팅되는 데에 외모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하나. =어려서는 외모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야 너는 잘생겼다’, ‘너는 외국 나가면 다들 잘 생겼다고 할 것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는. 내가 일반적인 미의 기준과는 벗어나 있기는 한데, 스스로 ‘나는 못생겼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전혀 안 한다.
-영화계에 있는 분들도 많이 안다고 하던데. =김태용, 김지운, 이재용, 용이 감독과 알고 지내고, 영화사 봄 오정완 이사와도 아주 친하다. 오정완 이사는 나를 TV에서 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전혀 선입견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날보고 영화도 해보자, 뭣도 해보자 그런다.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본다고 들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흔히 안 보는 영화를 보게 되더라. 귀찮으니까. 그리고 내가 끼면 모든 게 마이너해진다. 음악을 하면 인디밴드가 되고, 영화를 하면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그런 식으로 변하더라. (웃음) 자부심까지는 아닌데, ‘와, 내가 그렇다니’ 하는 것 중 하나가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왕의 남자>, 이 네편을 아직도 안 본 거다. 아마 흔치는 않을 거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결국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같은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남달랐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이 중심이기 때문에 많이 와닿았다. 헤어지는데 이케와키는 무덤덤하고 쓰마부키는 걸어가다가 울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날 보면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영화를 보다보면 눈물이 나서 힘들다.
-눈물이 많은가보다. =그런 편이다. 사람들이 그만큼 나를 모르는 거다. 아마 내가 눈물이 많은지는 우리 색시도 모를 거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출연하는 것뿐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도 많다고 들었다. 용이 감독이 연출하는 <오이시맨>이라는 영화의 원안도 직접 썼다고 하던데. =2년 전 부산영화제에 갔는데, 조성규 대표와 영화를 보러 갔다가 5분 정도 늦어서 입장을 못했다. 남은 1시간55분을 때워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래서 대영극장 앞 커피숍에 둘이 앉아 있다가 내가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마치 어디서 들은 것처럼 이야기를 지어낸 거다. 하락일로의 작곡가가 일본에 가게 되고, 폭설로 하루가 붕 뜨면서 민박집 주인 딸과 하룻밤을 지내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스킨십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이야기 안에는 노래도 있는데, 그 노래까지 다 지어버렸다. 그로부터 몇달 뒤에 집에 있는데 정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순간이 됐다. 정말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컴퓨터에 그때 이야기를 기억해내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적어서 메신저로 조 대표에게 연재하듯이 보내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조 대표가 그것을 다 모아뒀더라. 이미 노래도 다 만들어놓고 해서 살을 좀 붙이고 했더니 그걸 해보자고 하더라. 그러니까 결국 주변에 여러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긍정적인 요인을 가진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야 이거 재밌다, 이게 좋다, 너 잘생겼다, 너 똑똑하다, 너 음악 잘한다, 이렇게 해줄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다.
-정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나보다. =칭찬은 김C도 웃게 한다, 이런 것 같다.
-다른 시나리오도 쓴다고 들었다. =단편소설을 쓰고 있는 게 있다. <미안>이라는 것인데 그것도 시나리오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일단 소설로 내고 싶다. 배우 조인성을 보면서 뭔가 생각이 나서 쓰는 것으로 농구팀 후보선수 이야기인데, 그냥 내가 재미있어서 쓰고 있다.
-영화감독에 대한 생각은 없나. =한때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데 감독이란 게 너무 어려운 일이더라. 그리고 내가 결정적으로 책임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감독은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직업이잖나. 그래서 못하겠다. 안 하련다. 그리고 음악 같으면 내가 할 수 있는 활동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서 딱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어떤 곡을 보면 베이스는 어떻게 가고, 멜로디는 어떻게 가고 하는. 그런 것처럼 감독이라면 시나리오를 딱 보면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고 하는 게 들어와야 하는데 내겐 그런 게 전혀 없다.
-꿈이 있다면 연출을 배우면 되지 않나. =그런데 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어떤 것을 배운 적은 거의 없다. 예전에 고생할 때 한국삽질학교에서 삽질을 배워서 노가다판에 간 게 아니다. 노가다판에 있다보니 삽질을 배운 것이지. 그리고 성격상 굉장히 게을러서 못한다.
-오랫동안 운동을 했는데, 음악계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10년 동안 야구를 했다. 내가 다닌 춘천고는 고3 때 두번 8강에 들어갔는데, 그것으로는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졸업하고 나니 할 게 없더라. 당연히 공부도 안 했고. 그런데 친구들이 ‘너 노래 잘하니까 가수나 해라’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다음날로 ‘난 가수할 거다’라면서 짐 챙겨서 서울로 온 거다. 그때가 변진섭, 조정현 같은 분들이 인기있을 때였는데, 그런 가수들의 앨범 재킷을 보면 하광훈, 신재홍, 지근식 등 몇몇 작곡가의 곡밖에 없더라.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밉보여서 곡을 안 써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그분들에게 잘 보이기는 어려울 것 같고 해서 내가 곡을 만들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가사를 썼다. 나중에 악기 배우면 곡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그러다가 기타를 배우게 됐는데, 여전히 가수가 될 방법을 못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한 TV프로그램을 보는데, 일산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막걸릿집이 나오더라. 그래서 돈이 있으면 꼭 저기를 가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날 1만원이 생겨서 거기로 갔다. 갔더니 주인 아저씨가 오갈 데 없으면 여기서 살라고 하더라. 그래서 거기서 서빙도 하고 주차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살게 됐는데, 마침 그 가게 옆 비닐하우스에 (강)산에 형이 살고 있었다. 산에 형 덕분에 폭넓게 음악도 듣게 되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 아마 산에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저 그전에는 가수, 아니 연예인에 대한 소망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 게 너무 다행스럽다.
-방송 오락프로그램에도 가끔씩 나오고 있는데. =음반을 알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그게 현실이니까 출연하는데, 잘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소속사에서는 방송에 나가서 탁재훈형처럼 MC 같은 것을 꿰차고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은데 정말 싫은 거다. 그래서 OCN의 영화 프로그램 <줌인> 같은 게 내게 맞는 것 같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침이 없고 주관이 강한데 방송사와는 많이 부딪힐 것 같다. =어차피 이젠 낯간지러운 건 못한다. 내 말투가 아니고 내 생각이 아닌 것은 할 수가 없다. 재미를 위해서 그렇게는 못한다. 그래서 방송사도 그런 요구를 잘 안 한다. 만약 그런 요구를 하면 나는 내 생각을 얘기한다. 이게 아니라고.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만약 본인의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나. =뭔가를 만드는 사람. 그것 같다. 내게 살아 있는 원동력 중 가장 큰 게 계속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것 같다.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연기를 하고 심지어 아기도 만들고.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강하고 그 만드는 사람이 내게는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냥… 세상을 바꾸겠다 뭐 이런 것보다는 멋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였으면 좋겠다. 한국을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이 좀더 재수있는 생각을 가진 그런 나라였으면 좋겠다. 재수없게 어디 가방이 좋다, 어디 부동산이 좋다 하지 말고 홍대 어디 가면 어떤 밴드가 있는데 걔네 음악 좋더라 이런 식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문화적인 것을 끌어가고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좀 개인적인 꿈은 없나. =그게 그거다. 그런 사람들이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 말이다. 언젠가 방송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 내가 문화부 장관 같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 무보수로. 그래서 문화와 관련된 모든 제한을 두지 않는 정책을 쓰는 거다. 그러면 예술가들의 사고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갈 것 아니냐. 그리고 공무원과 아티스트와의 결혼을 국가적으로 밀어주고 싶다.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세금감면 혜택 같은 지원도 해주고 월급도 더 주고. 그렇게 먹여살려주면 아티스트가 예술에 전념할 것 아니냐. 맡겨만 달라. 잘할 자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