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에서 지방 관객을 위한 독립영화제를 연다는, 무모한 계획이 시작된 것이 1999년. 매년 8월 첫잿주 주말마다 정동진초등학교의 밤을 하얗게 밝히던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올해도 변함없는 모습을 선보였다. 서울지역의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완전히 손을 떼고, 강릉시네마테크만의 인력과 노하우로 영화제를 꾸린 지 5년 정도. 박광수 강릉시네마테크 사무국장 겸 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특유의 입담과 에너지로 그 기간을 함께한 정동진의 터줏대감이다.
-어떻게 엮인 건가. =2000년에 제대하고, 2회 영화제를 준비하던 강릉시네마테크의 동네친구, (김)동현이가 후원회비를 내라기에 1만원 정도를 냈다. 그전까지 독립영화는 본 적도 없었다. 가을에 복학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너무 심심하더라. 시네마테크에 가입해서 3회 때부터 영화제 노가다를 시작했다. 관객과의 대화 때 마이크 들고 객석을 뛰어다니면서 관객에게 박수도 많이 받았다. (웃음)
-다양한 관객을 만족시켜야 하니, 프로그래밍과 관련한 우여곡절이 많겠다. =5회 때 시에서 후원을 받아보겠다고 관계자를 초청했는데 마침 광주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 <김종태의 꿈>이 상영작이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시에서 별다른 후원은 못 받고 있다. (웃음) 영화제가 열악하다보니 포맷별로 섹션을 나눌 수밖에 없는데, 지난번에는 한 섹션이 통째로 자살을 다룬 영화여서 혼자서 섬뜩해하기도 했고. 지지난해에는 애니메이션 <지옥>을 틀었는데, 완성도는 있었는데 중간중간에 너무 살벌한 장면이 나와서 애들이 울고, 몇몇 가족은 자리를 뜨고, 난리도 아니었다.
-RTV에서 꽤 인기있는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다던데. =액션TV라는, 지역 영상단체와 활동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간 하다가 잘렸다. RTV 이사께서 액션TV 진행자가 재밌다는 말을 했다기에 뿌듯했는데 알고보니 다른 진행자도 그런 말을 들었다더라. 아무한테나 다 하는 말이었나보다. (웃음)
-영화제와 관련해서 가장 뿌듯했을 때는. =우리 영화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 언제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근데 이젠 관객의 60% 이상이 지역 주민이다. 가장 열렬한 관객은 정동진초등학교 학생들. 3, 4년 전 상영작까지 기억하는데, 누가 옆에서 영화에 대해 아는 척하면 비웃을 정도다. (웃음) 진주나 대전 같은 지방에서 영화제 기간에 맞춰 피서를 잡는 분들고 있고. 2002년인가 비가 와서 상영을 취소한 첫날 찾아왔다가 허탕치고 돌아간 뒤, 교실 안으로 자리를 옮긴 둘쨋날 또 찾아와서 영화를 보더니 마지막날에는 관계자를 돕고, 그 이후로 6년째 영화제 자원봉사자를 자처하는 친구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