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영화는 계속된다. ‘단군 이래 가장 힘든 상황’이라는 말이 엄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한국 영화계가 2007년 가을 이후의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충무로는 유난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세가 대단했던 올해 여름시즌을 보내면서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의욕적인 새 출발을 준비 중이다. 9월 이후 연말까지 배급일정이 잡혔거나 배급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영화는 모두 57편. 이중 독립장편영화 8편을 제외하면 49편의 영화가 관객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적정 제작편수가 1년에 60~70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4개월 동안 개봉되기에는 너무도 많은 영화가 대기 중(남은 17주 동안 매주 평균 2.88편의 한국영화가 개봉돼야 한다)인 상태다. 게다가 그중 뚜렷하게 눈에 띄는 작품이 드물다는 사실은 2007년의 마지막 3분의 1 지점에서도 한국영화가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자아낸다. 결국 아직까지도 2005년 후반부터 지난해까지 극심했던 ‘거품’의 영향권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모두 소화되지 못한 채 유령처럼 극장가 언저리를 떠돌고 있다는 얘기다. 9월부터 12월까지 개봉이 추진되고 있는 57편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상반기에 개봉을 준비하다 밀려난 영화들이고, 그 57편 중 일부가 다시 2008년 상반기로 밀려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거품의 잔존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개봉예정작에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는 산업이 큰 위기를 겪을 때마다 예상치 못했던 영화가 등장해 분위기를 급반전시켰던 저력을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흙 속에 파묻힌 희망의 진주를 발견하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57편의 한국영화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