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Night> 케미컬 브러더스/ EMI 발매
1990년대 이후의 테크노-일렉트로니카 음악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의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케미컬 브러더스(The Chemical Brothers)는 언젠가 마주치게 될 이름이다. 그건 이를테면,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기 위해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테크노-일렉트로카는 성격상 기본적으로 ‘지하의’(underground) 음악이다. 그것은 낮보다는 밤에, 라디오보다는 클럽에서, 환한 조명보다는 어둑어둑하거나 사이키델릭한 조명에서, 사리분별이 명확할 때보다는 술이나 약에 취했을 때 더 쉽게 흡수되고 소비되는 음악이다.
케미컬 브러더스는 테크노-일렉트로니카의 이런 삐딱한 성격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낮과 라디오와 환한 조명과 사리분별이 명확한 사람들에게도 환영받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왔다. 즉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메인스트림 음악계의 스타가 된 프로디지(Prodigy)와 팻보이 슬림(Fatboy Slim)과 더불어 비주류 장르 취급받던 테크노를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장르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뮤지션이다. 이들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은 테크노가 작은 클럽이 아니라 록 페스티벌의 거대한 무대에서도 어색함없이 울려 퍼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흔히 ‘빅 비트’(big beat)라는 말로 설명하는 케미컬 브러더스의 음악은 힙합의 ‘탄력’(bounce)과 로큰롤의 ‘파워’와 아날로그 테크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삼위일체를 통해 탄생한다. 그들은 테크노의 음악적 성격인 비트의 무한반복에 따르는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힙합과 로큰롤의 핵심적 요소들을 가져왔고, 여기에 스타급 게스트 뮤지션들(예를 들어 오아시스(Oasis)의 노엘 겔러거)을 동원한 ‘멜로디 중심의 히트곡’들을 통해 업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지켜왔다. 프로디지나 팻보이 슬림이 역사의 뒤안길로 (거의) 사라진 지금에도 이들은 계속 공연을 하고 계속 음반을 낸다.
신보 <We Are The Night>에서도 케미컬 브러더스는 여전히 훌륭한 음악을 들려준다. 첫 싱글 <Do It Again>을 비롯하여 <We Are The Night> <All Rights Reversed> <Das Spiegel> <Burst Generator> 등의 곡들에서 등장하는 간결하고 세련된 비트는 어느덧 장인이 된 이 노장 테크노 DJ들의 빈틈없는 손놀림을 통해 교묘하게 배치되어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음반은 놀랄 만큼 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렇게 쿵쾅거리는 비트로 도배된 음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정적’이라는 것이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그런 느낌이 딱히 어색하지도 않다. 푸른색 커버에 새겨진 기묘한 그림,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에 나오는 식탐 괴물의 손이 연상되는 별자리 그림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좋긴 하지만, 지나치게 이들의 음악에 익숙해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