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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연쇄살인범의 목소리 <10번가의 살인>

EBS 7월29일 오후 2시20분

허름한 집 이층에 세를 놓고 불법 의료 행위를 하는 크리스티(리처드 아텐보로). 그의 집에 이사 온 여자들은 어김없이 그의 먹잇감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의학 지식으로 아픈 여자들을 유혹한 뒤, 직접 개발한 최면 가스로 여자들을 기절시키고 목을 졸라 살해한다. 여자들이 점점 의식을 잃어가면서 그에게 마지막 저항을 하려고 발버둥칠수록 그는 점점 더 성적으로 자극받는다. 어느 날, 이 위험한 공간에 티모시 가족이 이사온다. 크리스티는 무식하고 우유부단한 남자 티모시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베릴을 주의 깊게 살핀다. 가난 때문에 임신 중인 아이를 중절하려는 베릴은 어쩔 수 없이 크리스티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물론 그녀 역시 크리스티의 희생양이 된다. 주도면밀한 크리스티는 티모시를 협박하여 사건을 은폐하는 한편, 그에게 누명을 씌운다. 티모시는 결국 가족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고 크리스티의 도착적 범죄 행각은 계속된다.

리처드 플레이셔의 <10번가의 살인>은 1940년대, 약 13년간 자신의 부인을 포함해서 8명의 여자들을 연쇄살인한 존 크리스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실제로 첫 사건 이후 10년이 지난 뒤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리처드 플레이셔는 생생한 사건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릴링턴 가에서 촬영을 감행했다. 영화의 크리스티는 문틈 사이로, 커튼 사이로 포획 대상을 면밀하게 훔쳐보고 폐쇄된 공간 속에서 여자들을 상대로 자기만의 의식을 치른다. 영화는 크리스티의 허름한 집 내부의 구조, 특히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좁아 보이지만 곳곳에 숨겨진 공간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극적 긴장감을 자아낸다. 아무리 초라하고 좁아도 카메라로 한번에 잡히지 않는 집의 구조는 크리스티의 도착증적 내면과 맞닿아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뇌리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마침내 체포된 크리스티의 모습에서 갑자기 커트되는 순간이다. 감독은 화면을 정지시키지만, 그 위로 그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지속시킨다. 마치 먹잇감 앞에서 흥분을 삭이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놈의 숨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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