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는 나른한 오후 보통 여자아이들이 입가에 침을 대롱대롱 흘렸다가 ‘스읍’ 하고 빨아들이며 머릿속에 그려본, 그 따사로운 꿈이 현실의 옷을 차려입고 팔랑거리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드라마들은 20대에 실장님 소리를 듣는 재벌 후계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신데렐라의 현재형이 여성의 판타지를 관통하는 불변의 설정이라 곡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같은 로맨스가 가당한 일이라 여긴 채 일상을 견디는 여성들은 많지 않다.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야심이 없고, 재능도, 배경도 없는 그냥 그런 ‘우리’는 이런 꿈을 그려본다. 고소쌉쌀한 커피 냄새가 진동하는 사랑방 같은 작은 찻집을 운영하며 단골 손님과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장면, 무쇠팔 무쇠다리의 강인한 체력을 자랑해도, 고기 한점 더 먹겠다고 먹성을 부려도 머리를 통통통 내려치며 귀여워해주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여성 대 남성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든든한 유대감을 만끽하는 순간 같은 것 말이다. 좀더 진도가 나가면 전망 좋은 집에서 머그컵을 든 채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근사한 내 모습을 떠올리며 배시시 미소도 머금는다.
윤은혜가 남자로 오인받는 선머슴 여인 ‘고은찬’으로 출연 중인 <커피프린스 1호점>은 그러한 손에 잡힐 것 같은 낭만성을 여성의 시선에서 종합선물세트처럼 내민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희귀한 존재인 여성 연출자(이윤정 PD)가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배경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이 드라마는 남성 연출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은 독특한 눈을 갖고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배경으로 티격태격하며 사랑, 우정, 꿈 등 원형의 감성을 싱그럽게 펼쳐내는 인물 군상은 남녀를 막론하고 예쁘장한 외모와 짓으로 특히 여성을 관음의 주체로 만든다. 이 드라마는 간혹 등장인물을 근거리에 다가가지 않은 채 창밖에서, 문밖에서 엿보곤 하는데 이 판타지의 필터를 낀 관조의 앵글은 몽롱한 속삭임의 보컬이 돋보이는 O.S.T 넘버와 더불어 꿈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힘을 발휘한다.
주인공의 입장이 돼 웃고 울게 마련인 시청자들은 가슴을 붕대로 친친 감아 성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윤은혜의 처지가 그리 안타깝지 않다. 자신을 철저하게 남자 취급하는 고약한 사장님(공유)이나 ‘어디를 봐서 은찬이가 남자 같냐’며 여자로 인정해주는 사장님의 사촌(이선균)은 전형적인 이성애의 이상형(채정안)에게 사랑의 작대기를 향하고 있다. 채정안-공유-이선균의 트라이앵글은 대단히 고급스럽고 ‘쿨’한 관계. 남자가 전화로 직접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면 여자는 “나, 슬퍼지려 해. 나중에 이 노래 들으면서 슬퍼질까봐”와 같은, 참 고운 코멘트로 맞장구를 친다.
반면, 윤은혜는 웃통을 훌훌 벗으며 시도 때도 없이 ‘갑빠’를 자랑해주는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구박을 받았다가 같이 농구도 했다가, 스킨십도 주고받으면서 원초적이고 ‘핫’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윤은혜를 포함해 ‘커피프린스 1호점’의 꽃미남들이 엮어가는 에피소드들은 여성 취향의 남성 동성애 연애물인 ‘야오이’의 감성도 살포시 자극하면서 일상성의 힘과 일탈의 짜릿함을 쌍끌이한다. 또 차원 높은 여성 대 남녀의 이성애도 제압한다. 사실 앞으로 점차 스며들듯 다가올 사랑(윤은혜-공유)이 버스 떠난 뒤 뒤늦게 깨닫는 사랑(채정안-공유)보다 더 장밋빛이라는 점만 고려해도 윤은혜는 여성들에게 행복한 감정이입의 대상일 수 있다.
공유가 윤은혜와 마주보는 계기를 ‘남자인 줄 안 그가 알고 보니 연약한 여자였기 때문에’와 같은 상투적인 귀결로 다룬다면 이 드라마도 커피회사 후계자와 남자인 체 가장한 변종 신데렐라의 뻔한 러브스토리를 답습하는 데 그칠 터이다. 담백하며 소소한 화법의 이면에 은근히 대담한 여성의 욕망과 시선을 장전한 <커피프린스 1호점>이 앞으로 얼마나 프랜차이즈 멜로 상품과 다른 장인정신의 커피향을 풍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