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있는 게 명예든 돈이든 권력이든 사랑이든, 경쟁에서 1등은 선망의 대상이다. 수석 합격자, 수위 타자, 수도 서울, 정부 수반, 수상 관저 같은 말들이 내뿜는 매력은 으뜸을 향한 인간의 드센 욕망을 밑절미로 삼는다. 그러나 정신건강에든 일종의 처세술로서든, 넘버원이 되는 것보다 넘버쓰리가 되는 것이 한결 나은 경우가 많다. 셋만으로 이뤄진 공동체에서 넘버쓰리 노릇을 하는 거야 속이 쓰리겠지만, 적정한 수준의 다수로 이뤄진 공동체에선 넘버쓰리만큼 우아함과 평안함을 겸한 자리도 드물다.
넘버원은 외롭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넘버원은 제 자리를 겨우 지탱하거나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자리를 노리는 발톱들이 사방에 숨겨져 있다. 그 발톱은 가장 가까운 친구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넘버원은 늘 둘레를 의혹의 눈으로 살핀다. 제도가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적 넘버원이 된 경우엔 더 그렇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랬다. 그들은 제가 저질렀던 방식으로 누군가가 제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악몽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그래서 늘 넘버투를 의심하고 교체했다. 실상, 제도 내부에 깔린 길을 따라 넘버원이 된 사람들도 크게 다르진 않다. 정통성을 갖춘 정부의 임기 중에도 넘버투는 바뀌기 일쑤다. 그 넘버투가 넘버원에게 흔히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넘버쓰리는 다르다. 넘버원은 넘버투를 경계하는 것만큼은 넘버쓰리를 경계하지 않는다. 공인된 넘버투도, 자신의 목표는 넘버원이므로, 넘버쓰리를 해코지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는 넘버쓰리와 힘을 합쳐서 넘버원을 무너뜨리려 한다. (이 때, 현명한 넘버쓰리라면 넘버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게다. 그렇다고 넘버원 편에 서서 넘버투를 몰아내려 하지도 않을 게다. 어느 쪽이 됐든, 그런 적극적 편들기는 자신을 전투의 한 가운데로 밀쳐 넣는 짓일 테니.)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는 은메달리스트보다 만족감을 더 느낀다고 한다. 은메달리스트는 비교 대상이 금메달리스트여서 상실감이 크지만, 동메달리스트는 비교 대상이 메달을 따지 못한 사람이어서 안도감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3등까지 시상을 하는 운동경기나 이런저런 경시대회에서 말고는, 넘버쓰리는 무명(無名)의 완곡어이기 십상이다. 지성사에서도 그렇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다. 넘버쓰리는 없다. 아니 있기야 하겠지만, 아무도 모르거나 의견이 분분하다. 역사학에서 소위 아날학파를 세운 이는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다. 넘버쓰리는 없다. 이른바 비판이론이라는 것을 내세운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관련해 사람들이 반드시 거론하는 그 1세대 사람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다. 누가 넘버쓰리인지는 또렷하지 않다. 이렇게 넘버투까지만을 쳐주는 인식의 틀은 ‘쌍벽’이니 ‘양대 산맥’이니 하는 상투적 표현에도 담겨 있다. 적잖은 경우, 넘버쓰리는 그저 넘버N인 것이다. 그러니까 강준만이 ‘주목중독증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겐, 넘버쓰리가 되는 게 악몽일 게다.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빈둥거리던 1940~50년대의 에밀 시오랑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젊은 시절 파리의 사교계에서 그저 ‘이오네스코의 친구’로 통했다 한다. 시오랑은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않은(못한) 채 공짜술을 실컷 마실 수 있었던 그 무명의 상황을 ‘편안’이라는 말로 회고한 바 있다. 시오랑은 파리에 정착한 루마니아 출신 문필가로선 종교학자 엘리아데와 극작가 이오네스코에 이어 넘버쓰리였다. 엘리아데가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철학자 뤼시앵 골드만이 끼어들어 시오랑은 여전히 넘버쓰리였다.
시오랑이 젠체한 것인지도 모른다. 철학사의 큰 이름들을 거론할 것도 없이, 주목받는 것, 다시 말해 인정받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원초적 욕망에 속한다. 그러나 중독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그만저만한 수준의 주목을 원하는 여느 사람에게 넘버쓰리 자리는 복이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거나 두 번째로 소중한 사람이 되는 건 괴롭다. 누군가의 넘버원이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고, 넘버투가 돼도 넘버원의 경계와 의혹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잡념 끝에 내 삶을 돌이켜보니, 지금까지는 비교적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가족이든 교실이든 동아리든 직장 일선이든, 어떤 수준과 크기의 집단이나 공간에서도 내 자리는 넘버쓰리 위로 올라간 적이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것 같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나는 넘버쓰리 이하다. 결혼 앞뒤로 얼마 간 어떤 여자에게 넘버원이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으나, 아이가 둘 생기며 다시 편안한 넘버쓰리로 돌아왔다. 내 넘버쓰리 예찬이 ‘신 포도’의 심리학이라고? 아니다. 당신의 넘버원 예찬이 외려 ‘달콤한 레몬’의 심리학이다. (‘달콤한 레몬’은 훔친 표현이다. 누구한테서 훔쳤는지는 안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