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웍스로부터 99년 개봉된 <더 헌팅>의 촬영을 제안받았을 때 칼 월터 린덴라웁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유니버설시티 촬영소의 세트가 완공되어 있어서, 막 다른 작품의 촬영을 마친 그가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 선뜻 제의를 수락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정작 그를 부담스럽게 한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얀 드봉(Jan de Bont)의 존재였다. 감독이기에 앞서 할리우드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눈부신 경력을 가진 그와의 작업이 그리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과 달리 얀은 촬영의 전권을 주고 칼에게 주었다. 촬영감독과 감독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던 그이기에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었음이다.
1943년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에서 태어난 얀 드봉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 것은 12살 되던 해 무심코 맡은 결혼식 촬영을 통해서였다. 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 그는 암스테르담 국립영화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인 수업에 임한다. 당시 네델란드는 다큐멘터리의 거장 요리스 이벤스의 나라답게 다큐멘터리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얀 드봉은 자연스럽게 그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게 된다.
1966년 장편다큐 <육체와 영혼>에서 촬영감독으로 신고식을 치른 뒤, 젊은 작가들과 교류를 갖던 그는 71년 폴 버호벤의 장편 데뷔작 <나는 무엇을 보는가?>의 촬영을 맡게 된다. 리얼리즘에 기반한 자극적이고 대담한 작품을 추구하던 폴은 얀 드봉과 만남으로 그 해 아카데미 외국어상 후보에 올라 주목된 <사랑을 위한 죽음>(73)을 제작하기에 이르며, 이는 두 사람에게 할리우드 입성의 발판이 된다. 81년 앨런 마이어슨 감독의 <개인교수>로 예상치 않은 성공을 거뒀고, 폴 버호벤과 작업한 83년 작 <포스맨>은 아보리아즈 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는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얀 드봉의 위치를 설명하려면 존 맥티어넌의 <다이 하드>를 빼놓을 수 없다. 거대한 세트로 분한 20세기 폭스사의 건물을 무대로 공중촬영과 핸드헬드 카메라, 적절한 특수촬영을 구사한 이 영화는 액션일변도의 기존 액션영화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다이 하드> 같다’, ‘<다이 하드>를 능가한다’라는 말은 액션영화의 고정 수식어가 되었으며, 이 영화로 얀은 액션영화 촬영감독의 기수로 자리잡게 된다. 얀의 촬영감각을 입증한 또 한 예는 89년 리들리 스콧과 펼친 액션누아르 <블랙 레인>이다. 오사카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풍경은 시리도록 푸른 새벽빛과 어우러져 미래세계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를 위해 실제로 거의 모든 장면을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촬영하였으며, 전체적인 색채의 조화를 위해 네온과 형광등을 주재료로 자신이 직접 설계한 인공등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좁은 공간에서의 긴박감을 연출한 <붉은 10월>과 대담하고 거친 영상의 <원초적 본능>까지 자유분방하게 장르를 넘나들며 역량을 과시한다. 이러한 활력 덕에 액션영화 연출의 적임자로 낙점을 받은 그가 <스피드>로 감독 데뷔를 한 것은 나이 50이 되던 해. 수많은 작품에서 다져진 독특한 영상감각은 메가폰을 잡은 뒤에도 유감없이 발휘되며, <스피드>의 놀라운 성공과 <트위스터>의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이제 그는 촬영감독 뿐 아니라 영화감독이라는 호칭이 낯설지 않게 됐다.그는 영화감독 얀 드봉이 촬영감독 드봉에게 상당부분 빚지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감독은 영화의 모든 부분들을 조망하고 있어야 하며 촬영도 예외는 아니다. 감독으로 자리한 지금도 촬영을 하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암스테르담 영화학교 시절 그는 감독과 촬영, 연기를 넘나들곤 했다. 그 시작하던 때 마음 그대로, 그에게 영화는 굳이 촬영, 감독, 연기로 세분화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물론 <스피드2>와 <더 헌팅>의 연이은 실패가 자아내는 아쉬움은 그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창의적인 정신으로 무장하였기에 그는 지금의 시련에도 당당할 수 있다. 지금껏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런 것이 있다면 난 벌써 은퇴했을 것”이라는 그가 다시 카메라를 쥐게 되는 날이 올까.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촬영감독
<리쎌웨폰3> (Lethal Weapon3, 1992) 리처드 도너 감독
<원초적 본능> (Basic Instinct, 1992) 폴 버호벤 감독
<사랑의 용기> (Shining Through, 1991) 데이비드 셸체르 감독
<붉은 10월> (The Hunt For Red October, 1990) 존 맥티어넌 감독
<유혹의 선> (Flatliners, 1990) 조엘 슈마허 감독
<버트 릭비> (Bert Rigby, Your’re A Fool, 1989) 칼 레이너 감독
<블랙 레인> (Black Rain, 1989) 리들리 스콧 감독
<다이 하드> (Die Hard, 1988) 존 맥티어넌 감독
<메두사 파괴 공작> (Leonard Part 6, 1987) 폴 웨일랜드 감독
<화려한 유혹> (Who’s That Girl?, 1987) 제임스 폴리 감독
<골치 아픈 여자> (Ruthless People, 1986) 짐 에이브러햄,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감독
<에이라의 전설> (The Clan Of The Cave Bear, 1986) 마이클 찹맨 감독
<나일의 대모험> (The Jewel Of The Nile, 1985) 루이스 티그 감독
<아그네스의 피> (Flesh & Blood, 1985) 폴 버호벤 감독
<뜨거운 가슴으로 내일을> (All The Right Moves, 1983) 마이클 찹맨 감독
<쿠조> (Cujo, 1983) 루이스 티그 감독
<포스 맨> (De Vierde Man, 1983) 폴 버호벤 감독
<로아> (Roar, 1981) 노엘 마셜 감독
<개인 교수> (Private Lessons, 1981) 앨런 마이어슨 감독
<캐티 티펠> (Keetje Tippel, 1975) 폴 버호벤 감독
<사랑을 위한 죽음> (Turks Fruit, 1973) 폴 버호벤 감독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Wat zien ik?, 1971) 폴 버호벤 감독
<파라노이아> (Paranoia, 1967) 에이드리언 디트부르스트 감독
<육체와 영혼> (Body and Soul, 1966) 르네 달데르 감독
감독
<더 헌팅> (The Haunting, 1999)
<스피드2> (Speed 2: Cruise Control, 1997)
<트위스터> (Twister, 1996)
<스피드> (Speed,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