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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린 경우
이영진 2007-07-19

<무간도2: 혼돈의 시대> <익사일>의 오진우

“아니 거기에도 나왔어?” 홍콩영화 마니아라면 펄펄 뛰겠지만, <익사일>의 오진우가 <무간도2: 혼돈의 시대>의 오진우, 그리고 더 거슬러 <백발마녀전>의 오진우임을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다. “오랜 친구이자 더없는 동료”인 황추생이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선 굵은 마스크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해 그의 곱상한 외모는 이국의 관객이 그의 존재를 인지하는 데에 장애물이었다. 오진우가 그동안 소수의 열혈팬들만이 애모하는 배우로 남았던 건 홍콩영화의 성쇠와도 무관하지 않다. 1986년 <미드나잇 걸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은 대략 80여편. 홍콩영화가 한국에서 승승장구할 1980년대에 그는 별볼일없는 단역이었다. “대부분 악당이거나 사이코였”지만 1996년 <고혹자>를 발판으로 개성있는 배우군에 진입해 매년 평균 1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던 1990년대는 한국 관객이 홍콩영화를 더이상 바라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다시 2000년대. 두기봉, 유위강, 맥조휘 등 홍콩에 남아 여전히 영화를 붙잡고 씨름하던 이들이 <흑사회> 시리즈와 <무간도> 시리즈를 내놓으며 홍콩영화의 새로운 미래를 알렸고, 그제야 이들의 숨겨진 조력자들도 복권의 기회를 얻는다. 우정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죽기 전에 미소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는 <익사일>의 오진우도 그중 한명이다.

유약하면서도 거칠고, 반듯하면서도 풀어져 있는 오진우의 복합무쌍 이미지는 <익사일>에서 효력이 배가 된다. 그저 의로움만이 매력의 전부일 것 같은 타이라는 캐릭터에 그는 건드렸다가는 곧바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의 뇌관들을 촘촘히 심어놓았다. <무간도2: 혼돈의 시대>의 맥조휘 감독의 말도 다르지 않다. “삼합회의 새로운 보스 예영효의 캐릭터를 흔한 깡패보다 CEO의 느낌으로 해보자는 건 오진우의 아이디어였다. 매우 지적이지만 실은 잔학한 보스의 이미지로 가자는 것이었다.” 하나의 캐릭터에 다양한 감정의 굴곡을 새기는 그의 재주는 사실 오랜 경험과 인내의 결과다. “돋보이고 싶고 돈과 명예를 얻고 싶어서” 삼수 끝에 홍콩 TVB의 연기스쿨에 들어갔지만 1985년 졸업 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곤 대개 이름없는 병사와 같은 엑스트라가 전부였다. 본인은 “드라마를 찍는 모든 사람들이 동문수학하는 사형이자 사제였다”면서 그때야말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고 회고하지만 그건 견뎌냈고, 지나왔기에 가능한 위안이다. 홍콩영화가 쇠락의 기운을 내보이면서 그에게는 매번 망가지는 역할이 들어왔지만, 그는 그걸 허투루 내치지 않았다. “연기자가 된다는 건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새치기를 해서 먼저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가용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다 그냥 포기하기도 한다. 난 버스가 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린 경우다.” (http://cafe.daum.net/ForFrancisNg에서 인용) 그의 말처럼, 이제 오진우는 달릴 일만 남았다. 혹시 아나. 배우는 물론이고 <9413>을 비롯해 벌써 3편의 영화를 연출한 그가 언젠가 두기봉과 어깨를 나란히 할 감독으로 손꼽힐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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