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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은 돌아오기 위해 있는 것?

<내 남자의 여자> <나쁜 여자 착한 여자> 등 ‘문제적 여성 캐릭터’로 시작해 ‘홈 스위트 홈’으로 끝난 드라마들

<나쁜 여자 착한 여자>

요즘 안방극장에 ‘문제적 언니’들이 제법 늘었다.

연애하수 노처녀, 위기의 주부 등을 지명타자로 내세운 드라마의 ‘여성탐구’ 시리즈가 끝도 없이 바통을 터치하고 있는 가운데 대담하게 불륜을 범하고, 싱글맘을 자처하며 ‘일부일처 결혼 제도’에 코웃음을 흥흥 날리는 도발의 여인들도 지분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월19일 막을 내린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김희애, 7월13일 종영한 MBC 일일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성현아, 방송 중인 SBS 특별기획드라마 <불량커플>의 신은경 등이 명석하되 정숙하지 않은 ‘불온한’ 기운을 내뿜으며 등장해 이목을 모은 주인공들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전 매체의 토픽이 됐던 김희애는 자기 이미지를 배반한 연기자 개인의 변신담뿐 아니라 불륜드라마 사상 가장 지독한 ‘가해녀’의 모양새를 체현했다는 측면에서도 올 상반기 드라마의 튀는 캐릭터 열전에 오를 만했다. 청천대낮에 하필 친구의 집에서 그 친구의 남편과 입술의 충돌을 감행하며 출발선을 끊은 그는 친구의 남편을 욕망했고, 결국 쟁취했다. 성현아는 다른 여성과 재혼한 전남편과 현재의 가정에 양다리를 걸쳐 일처다부의 두집 살림을 엮어가는, 새로운 포맷의 불륜상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신은경은 누구의 부인자리는 사양한 채 우등 유전자의 아이 엄마만 되기를 갈망하는 싱글맘 희망자로 발칙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기본 요건만으로도 ‘스위트홈’이 절대우위의 가치임을 주장하는 현대사회의 질서를 교란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무장한 듯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위험한 반란은 시작은 거창했으나 끝은 미미한 ‘용두사미’가 됐고, 돼가고 있다. 기득권과 의리를 버려도 자기 욕망에 솔직하게 살겠노라고 큰소리친 김희애는 사랑의 소유에 성공한 뒤 밥하고 설거지하는 양처의 앞치마를 걸쳤으며, 결국 자신과는 아이없이, 결혼서약 없이 같이 살고만 싶은 남자의 ‘비겁한 사랑’에 절망해 다시 사랑의 유목민이 됐다.

성현아 역시 주위의 질타를 무릅쓰고 현재의 가정을 깬 뒤 전남편과 재결합해 사랑을 택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막판에 방향키를 틀어 원대 복귀하겠다며, 애절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당돌한 신은경도 임신에 성공한 다음 자궁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듣게 돼 목숨을 건 출산 작전과 아이 아빠 찾아주기의 사랑 작전을 눈물겹게 병행하고 있다. 신은경표 반란의 끝도 난관을 극복하고 아이에게 유전자를 준 상대와 결혼에 골인하든, 아이만 얻고 세상을 떠나든, 가정과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 ‘바람직한 엔딩’일 것이다.

이 일탈의 여성들을 앞세운 드라마들은 권선징악의 유치한 이분법으로 이들을 응징하지 않으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내 남자의 여자>인 김희애만 해도 닮고 싶은 롤모델은 아니었어도 그 나이에 그토록 두려움없이 파괴적인 솔직함과 열정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부러움과 연민을 자아냈다.

물론 정도를 걷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들의 감정적인 행위를 십분 납득할 수도, 또 지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개개인에게 던져놓은 ‘잘 사는 법’의 ‘레시피’를 비켜간 그들의 선택과 사연은 부도덕하다고만 외면할 수 없는, 생각하고 느끼며 살려는 인간의 전복적인 에너지도 엿보였다. 그런데 이 언니들의 얘기에 드라마들은 귀를 한껏 기울여주는 것 같다가 결국 ‘제자리 돌기’식 몸부림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며 애틋한 시선까지 슬쩍 보내고 있다. 그 허무한 에필로그가 현실을 반사한 거울일지는 몰라도 선명한 마녀사냥보다 더 얄궂어 보이기도 한다. 역시, 인생의 해피엔딩은 켜켜이 내재돼 있는 부조리함을 눈감더라도 ‘즐거운 우리집’을 찬양하는 일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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