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어느 날, 용산
자유로운 땅을 욕망하다
2015년, 용산공원사업이 끝난다. 미군기지 반환에 이은 지역 개발이 매듭을 짓는다. 용산은 서울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가닿을 마지막 처녀지다. 2015년의 용산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쟁박물관, 서울타워, 전자상가, 재벌가 집성촌, 이태원, 용산공원, 미군기지(일부는 여전히 남게 된다) 등을 한품에 껴안게 된다. 전근대와 근대, 메타담론과 소수자, 단일민족과 다문화, 강철과 녹지가 한번에 어울려 들어간다.
서울의 거리는 ‘배타적이어서 특별한 무엇’을 꿈꾸고 난 자리다. 구한말의 종로, 일제시대의 충무로, 군사정권시절의 명동, 90년대 강남, 2000년대 홍대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구분되는 나만의 밤 공간’이 쉼없이 탄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재발견’과 ‘재해석’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용산은 지루해지기 시작한 서울 사람들의 모든 욕망을 향해 열려 있는 미래의 멀티콤플렉스다.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궁리 펴냄)에서 지은이 홍성태는 “용산은 사막이자 오아시스”라고 썼다. 미군기지가 광대한 지역을 장악했다는 점에서는 사막이지만, 유일하게 남은 대규모 녹지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오아시스라는 이야기다. 용산이 온전한 생태녹지공간으로 거듭날지는 의문이지만, 용산이 서울 사람들의 욕망을 달래줄 최후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토달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서울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일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겐 적합치 않다. 세종로, 세운상가, 청계천, 정동, 북촌, 종묘, 대학로, 이태원, 압구정동, 명동, 여의도의 ‘재구성과 재창조’를 끊임없이 촉구한다. 근대가 서울을 어떻게 ‘난민의 도시’로 만들었는지 드러내고, 이를 장차 ‘시민의 도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사람들이 길에 나서는 이유가 즐거이 머물 땅을 찾는 데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즐거운 땅을 더 많이 만들자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이제 서울의 여름밤에 대해 솔직해질 순간이 왔다. “서울은 공갈빵이다. 너무 커서 도무지 짐작이 안 가는 공갈빵. 서울이라는 공갈빵이 지겨워 서울 밖으로 나가봐야 작은 규모의 서울, 혹은 서울을 꿈꾸거나 서울의 일부를 잘못 옮겨놓은 것 같은 공갈빵을 만날 뿐이다.” <서울생활의 재발견>(현실문화연구 펴냄)은 특별함을 갈망하면서도 언제나 평범함으로 돌아오는 서울의 공간을 미술기획을 통해 되짚는다.
서울을 벗어나도 서울만 있다. 차라리 서울에서 서울을 재발견하는 일이 더 특별하다. 다만 일탈의 밤이 가고, 일상의 아침이 밝아올 때, 우리는 어디로 더 탈출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모두다 합치면 서울 대략 완전정복
서울에 대한 책들 11권
‘서울 완정정복’ 따위의 책은 없다. 서점의 분류방법에 따르자면, 서울에 대한 책은 △답사·여행 △지리·역사 △예술·문화 △사회과학 코너 등에 분산배치돼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울을 소개한다. 누군가의 일상이 또 다른 이의 일탈이 되는 이 기묘한 도시의 본성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다만 이를 위해 몇권의 책을 함께 읽는 수고가 필요하다.
서울을 공부하고 싶다면.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홍성태 지음/ 궁리/ 2004년 근대화가 망쳐놓은 서울을 비감한다. 서울 곳곳에 얽힌 근현대사를 섭렵할 수 있다. 생태주의 지향이 강하다.
<서울의 밤문화> 김명환·김중식 지음/ 생각의나무/ 2006년 중년 남성의 시선이 강하긴 한데, 구한말 이후 80년대까지의 밤 문화가 흥미진진하다. 그 이후는….
<신서울기행> 최준식 지음/ 열매출판사/ 2004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정신을 서울에 적용했다. 지은이의 주관이 두드러진다.
서울을 사색하고 싶다면.
<서울생활의 발견> 강수미·김학량 외 지음/ 현실문화연구/ 2003년 예술인·지식인들이 청계천, 중림동, 인사동, 북한산 등에 얽힌 이야기와 그 현대적 의미를 풀었다. 각 글을 잇는 일관성은 다소 약하다.
<서울생활의 재발견> 강수미 지음/ 현실문화연구/ 2003년 후속작인데, 서울의 사각지대를 탐색한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서울의 일상을 짚었다. 미술책이기도 하다.
<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지음/ 북하우스/ 2006년 그곳을 직접 찾아가기보다 글을 따라 생각에 잠기기 좋은 책이다. 건축에 대한 다소의 교양이 필요하다.
서울을 즐기고 싶다면.
<서울 도심에서 만나는 휴식산책길> 장상용 글·이호형 사진/ 넥서스/ 2005년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걸을 만한 로맨틱한 산책로를 탐방했다. 관광 가이드의 성격이 강하다.
<골목에서 서울찾기> 전영미 글·한수정 사진/ 랜덤하우스/ 2007년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다. 맛집, 멋집 정보에다 역사 이야기를 버무렸다.
<골목이 있는 서울, 문화가 있는 서울> 이동미 지음/ 경향신문사/ 2006년 위 책과 비슷한 틀을 갖췄는데, 문화·교양 콘텐츠를 좀더 특화했고, 등장하는 장소가 조금 더 많다.
<서울 답사여행의 길잡이>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돌베개/ 2004년 문화유산답사회가 전국을 안내하는 15권의 시리즈를 냈는데, 그 가운데 서울 편이 있다. 문화유산답사의 정통서다.
<서울은 지금 촬영중> 서울영상위원회 지음/ 북인/ 2006년 영화 촬영장소로 등장했던 서울의 공간을 찾아간다. 영화로 감상하기엔 괜찮은데, 막상 가면 별로인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