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로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이준기는 스타라는 단어가 여전히 어색하단다. “지금은 작품 자체를 그냥 즐기고 싶다. 예전에는 나도 모르는 어떤 벽이 있었던 것 같다.” 매번 선배와의 협연을 강조하던 그가 안성기, 김상경 등 만만치 않은 공력의 배우들과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다. “순수하게 시나리오가 좋아 선택했다”지만 “참여한 것만으로 삶의 중요함을 일깨운 작품”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매혹적인 광대 공길, 싸움고수 승석을 거쳐 그를 찾은 캐릭터는 택시운전사 민우의 동생 진우.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해 형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인물이다. 출연 분량은 다소 적을지 몰라도, 이번 인터뷰를 위해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찍는 중에 한시바삐 달려온 것을 보면 작품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믿음직스러웠을 듯했다.
-부산 출신에 나이도 20대 중반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까지 5·18에 대해 잘 모르지 않았나.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억압받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줄은 몰랐다.
-당시를 기록한 영상물이나 책 같은 자료는 찾아봤는지. =외신기자들이 당시의 광주를 찍은 사진집 같은 게 있더라. 팬들이 보내줘서 볼 수 있었다. 영상물도 인터넷으로 찾아봤고. 작품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는 도리어 내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서. 충격이었다. 광주 내려가선 묘지를 찾고 5·18을 기록한 영상물도 봤다.
-5·18이라는 소재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극중 내가 갖고 가는 비중이 크지 않다. 시나리오가 가슴 뜨겁고 감동적이라 참여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캐릭터가 없었다. <첫눈의 사랑>을 찍고 있던 중이라 시간상으로도 힘들었다. 고민하다가 감독님을 만났다. 진우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감독님도 그래주면 고맙겠다고 하시더라. 나중에는 두렵기도 했다. 좋은 작품에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고. 감독님은 감수하겠다고 하셨지만.
-극중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데 가발을 쓴 건지. =<첫눈의 사랑> 때문에 짧은 머리를 할 수 없었다. 최대한 폭을 쳐내고 가발을 썼다. 만약 <화려한 휴가>만 했다면 그 시대에 맞게 짧게 깎아야 했겠지만. 그래서 나도 더 걱정되더라.
-이준기라는 사람을 속속들이 모르지만 미디어에 비친 모습만 보면 진우와 꽤 비슷할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편했다. 나도 주관이 확실하고 고집있고 한편으로 상당히 여린 사람이라 진우를 내 자신에 대입하려 했다. 막상 감독님은 다른 모습을 생각하셨던 것 같지만. (웃음)
-감독은 어떤 캐릭터를 요구했는지. =글쎄, 더 성숙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 형에 대한 사랑과 목표의식, 거기에 성숙한 느낌도 묻어나는. 형을 챙길 줄 알고 형과 형이 사랑하는 여자를 직접 엮어주고 싶어하는, 그럴 만큼 성숙한. 동시에 아직 형이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인물.
-형에게 시대의 비극을 알리는 인물이다.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사는 자칫 딱딱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싶다. =5·18의 가해자들이 너무 잘살고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 요즘 세대의 입장에서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화가 나고 울분이 치밀고. 그러다보니 대사 하나하나에 힘이 실리더라. 그런 연기는 너무 쉬웠던 것 같다. 누가 해도 그런 연기는 나올 거다. 그 시대의 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화려한 휴가>는 김지훈 감독의 전작과 많이 다른데. =의심스러웠다. (웃음) 느낌 자체가 너무 다르니까. 현장 가서 생각이 바뀌었다. 많지 않은 대사지만 꼼꼼하게 리딩을 하게 하셨고. 이 작품에 모든 것을 거셨구나 싶기도 했고.
-현장에서 어떤 감독이었는지 궁금하다. =치밀하다. 무섭다. 연기할 때 주눅 드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그렇더라. 선배님들도 계시고 감독님도 꼼꼼하시니 내 연기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 조금 겁나더라. 초반에는 그랬다.
-관객이 이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으면 하는지. =내 캐릭터가 당시를 제대로 직시하게 도와주는 인물 중 하나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찍고 있는데 이후의 작품은 결정됐나. =보고 있는 작품은 있다. 영화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