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같이 똑같은 아파트 광고들 사이에서 이번엔 뭔가 새로운 게 나오나 했다. 검은 바탕에 중심을 가로지르는 심플한 선과 간결한 메시지, 세련된 편집과 영어 전문 성우 리처드 김의 인상적인 마무리까지 제법 괜찮을까 했다. 그래서 잠시 혹하기도 했다. 근데, 왜 보고 나면 이렇게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것일까?
아무리 스타일이 세련되면 뭐하냐 이거요. 알맹이가 전혀 없는데. 가재를 잡아오랬더니 때깔 좋은 수영장가서 물장구만 치는 바보 근육맨을 보고 있는 듯하여이다.
그러니까 예전에 나이키가 어느 날 갑자기 선언을 했더랬다. ‘우리의 라이벌은 닌텐도다!’라고. 그리고 그것을 어느 한 마케터가 잽싸게 책으로 펴내기도 했더랬다. 그리고 그걸 한 광고회사 AE가 읽었던 게다. 새로운 것 좀 가져오라며 도끼눈 뜨고 닦달하는 광고주에게 ‘Always Excuse me’를 연발하며- 광고회사 AE는 외부적으로는 Account Executive의 약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항상 광고주에 굽실거리는 ‘Always Excuse me’의 약자라는 것이 광고계의 정설이다- 원형탈모증에 시달리던 AE는 무릎을 쳤을 게다. 그래! 이거야! 우리의 경쟁사는 이제 아파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야. 새롭잖아? 여어, 이봐. 라이벌 될 게 뭐 있지? 좀 찾아봐. 여기에 심드렁하게 듣고 있던 카피라이터가 대꾸한다. 요즘 한 패션 한다는 애들은 다들 아이포드 가지고 다니잖아요. 아이포드와 아이파크, 아이가 같네. 야~ 그거 좋다! 하여 그럴듯한 기획서와 때깔나는 광고안으로 박수 받고 CF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는 재미나는 광고계 이야기. 안 봐도 비디오다. 그게 생활이거든요.
나이키가 아디다스도 우리의 프로스펙스도 아닌 닌텐도를 라이벌로 선언한 배경은 이렇다. 밖에 나가서 나이키 운동화 신고 열심히 땀 흘리며 뛰어다니며 놀아야 할 애들이 하라는 운동은 안 하고 앉아서 닌텐도 게임기만 붙잡고 있으니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닌텐도만큼 애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재미있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라이벌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건 시장을 위에서 바라보는 나이키의 안목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1등의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타겟을 다시 되찾아오기만 하면 저절로 나이키는 살아나게 되어 있다는 자신감과 즐겁고 젊은 브랜드의 대표주자라는 자부심 말이다. 뭐, 그렇단 얘기.
다시 되돌아와서, 너도나도 자꾸만 찔러대어 피곤한 아이포드는 기능은 다양하지 않을지언정 꼭 필요한 기능을 편리한 인터페이스에, 그것도 사람을 혹할 만한 세련된 디자인에 담아내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애플의 고집스런 장인정신이 드디어 대박 하나를 터뜨렸다고나 할까. 한데 라이벌이라고 주장하는 아이파크는 뭐가 있을까. 아파트 분야의 독보적인 1위인가, 아니면 디자인이나 기능적인 면이나 주거환경 면에서 괄목할 만한 혁신적인 무엇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렇다면 이건 빈 깡통이다. 무엇 하나라도 고개가 끄덕여져야 ‘라이벌’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 아니던가. 지인 중 누구는 ‘네이버 댓글 수준의 광고’라며 콧방귀를 뀌기까지 하더라. 아이파크 이노베이션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면 그 ‘혁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먼저 이야기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라이벌 CF가 조금은 더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분명 CF는 잘 만들었다. 뭔가 있어 보인다. 때깔도 난다. 세련되었다. 그러나 CF의 스타일이 아무리 세련되었다 하더라도, 그 메시지가 디딜 곳 없이 붕 떠 있는 것일 때는 세련된 스타일 자체도 자칫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CF는 결코 마법이 아니다. 공기를 잔뜩 넣은 공갈빵은 분명 커 보이기는 배부르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뭐, 하긴 아이파크와 아이포드가 상대가 될 만한 것이 있긴 하다. ‘아이’가 돌림자인 건 사실이잖아. 그래, 그렇다면 나도 ‘김태휘’로 개명하고 ‘김태희와 미모의 라이벌’이라고 주장할 테다. 아마, 돌 맞겠지?